#1.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청학 아파트. 전체 70가구 뿐인 소규모 나홀로 단지인데 최근 호가가 급등했다. 작년 7월만 해도 13억5000만원에 거래된 전용면적 85㎡짜리의 최근 호가는 19억원이다. 지금과 같은 거래절벽 시기에는 나홀로 아파트부터 값이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동의서 징구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호가가 오른 것”이라면서 “급매물도 없고, 대세 상승장 때처럼 호가가 5000만원, 1억원씩 단번에 올랐다”고 했다.

#2. 서울 강남구 대치 선경 3차 아파트. 학군지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대치역’ 바로 앞에 있지만 전체 가구 수가 54가구에 불과한 나홀로 아파트지만 없어서 못 산다고 한다.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지하 7층, 지상 18층, 총 68가구 규모의 고급 주상복합으로 탈바꿈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일단 호가 산정부터가 어렵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곳을 사고 싶다는 사람은 많은데 매물이 전혀 나오지 않고 구하기도 어렵다”면서 “2019년 12월 이후 거래가 전혀 없다”고 했다.

3일 오후 서울 남산 전망대를 찾은 시민이 강남구와 송파구 한강 근처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강남권 부동산 시장에서 구축 나홀로 아파트의 몸값이 오르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일부 단지에서 소규모 재건축 사업이 진척을 이루면서 기대감이 커진 결과다. 특히 신탁사들은 이런 사업이 가능한 지역을 찾아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무궁화신탁 관계자는 “지가가 높은 곳은 소규모 정비사업이라도 충분히 사업성이 있어 조합원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면서 “앞으로 소규모 재건축 사업이 더 활발해질 것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소규모 재건축은 면적 1만㎡ 미만이고, 200가구 미만이면서 노후·불량 건축물이 3분의 2 이상인 곳에서 추진되는 사업이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도로와 붙어 있는 노후 저층 주거지의 주택을 헐고 그 자리에 소규모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하려면 면적 1만㎡ 미만에 주택 20가구 이상이어야 한다.

소규모 재건축 사업이나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속도를 내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대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각종 규제가 중첩된데다 조합원간 의견 조율이 어렵다는 점에서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기 어렵다.

소규모 정비사업은 조합원 수가 적어 의견 조율이 상대적으로 빠른데다, 절차도 간단하다. 정비구역 지정이나 추진위원회 결성 등의 절차가 생략되고, 건축심의를 통해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소규모 정비사업은 지자체 입장에서도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라면서 “대규모 이주로 전셋값을 자극할 요인이 적고 도시재생 측면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분양가 상한제 규제에서도 한 발 빗겨나있다. 29가구 미만으로 분양할 경우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조합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소규모 재건축은 활용할 수 있는 대지가 크지 않은데다 건물의 사선제한 등 모든 규제를 감안하면 증가 가구 수가 20~40가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29가구 미만으로 분양하면 조합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영향도 크지 않게끔 계획을 짤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오는 4월 효성중공업이 분양할 서울 강남구 삼성동 98 일대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오는 6월 라온건설이 분양할 청담동 영동·한양빌라다. 효성중공업은 118가구 중 전용면적 59~133㎡ 27가구, 라온건설은 42가구 중 78~105㎡ 16가구를 분양할 계획이다.

다만 나홀로 아파트의 경우 신축 아파트로 바뀐다고 할지라도 중장기적으로 대단지 아파트만큼 가격이 오르기가 어렵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특히나 요즘엔 커뮤니티 시설을 기반으로 아파트 고급화를 이루고 있는데, 소규모 단지는 이런 이점을 누릴 수 없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청약 시장에서 나홀로 아파트의 인기부터 낮아진 것이 좋은 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1순위 청약을 받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 일부 주택형에서 1순위 미달이 나왔다. 서울에서 1순위 청약 미달이 나온 건 지난 2020년 9월 이후 1년 반만의 일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한 동짜리 나홀로 아파트에 주택형도 모두 전용 18∼23㎡의 초소형이어서 청약 통장 사용자가 적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준석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는 “신축 아파트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홀로 구축 아파트 단지가 인기를 얻을 순 있지만 기대감을 모두 반영한 경우에 매수하는 경우라면 실거주 만족도를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