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도 물류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끊이지 않은 실정이다. 건설 과정에서 가연성 물질을 아예 퇴출하지 않는 한 이를 멈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평택시 한 물류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최근까지 경기도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 16건 가운데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가 7건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지난 5일에도 마켓컬리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평택 청북읍 팸스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 3명이 순직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이천 쿠팡 덕평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 1명이 순직하고 1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 화재는 최초 발생 후 6일이 지나서야 겨우 진압이 완료됐다. 지난 2020년에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서 냉동창고가 폭발하는 화재 사고로 무려 38명이 숨지는 ‘이천 참사’가 있었다.

이처럼 물류센터에서 화재 사고가 빈발하고, 한번 발생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은 것은 애초에 화재에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상주하는 주거·공장 건물과 달리 물건이 주로 적재되는 창고 건물 등은 방화 규정이 느슨한 편이다.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실내 공간 1000㎡마다 방화구획을 편성해 방화셔터 등을 설치하는 것이 의무지만, ‘내부설비의 구조상 방화벽으로 구획할 수 없는’ 창고 시설은 예외인 것이 대표적이다.

건축 자재도 문제다. 물류창고는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이 들어가는 소위 ‘샌드위치 패널’이 외벽으로 사용되고, 골조도 스티로폼이 혼입되는 프리 캐스트(PC) 콘크리트로 시공되는 경우가 많다. 불에 닿으면 타지 않고 녹는 난연성 스티로폼도 개발됐지만, 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은 대부분 잘 타는 가연성 스티로폼이다. 난연성 스티로폼 자재는 가격이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고 내에도 다양한 가연물질이 쌓여있어 작은 불씨도 큰 화재로 이어지기 쉽다.

특히 최근 신선식품 배송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증가하고 있는 저온 물류창고는 온도 유지를 위한 단열재가 많이 사용돼 화재 위험성이 더 높다. 보통 단열 성능이 뛰어나고 시공이 간편한 ‘우레탄폼’을 마감재료로 사용하는데, 이는 밀폐된 공간에서 불이 한번 붙으면 순식간에 폭발 사고로 이어지는데다 잘 꺼지지도 않아 대형 화재로 이어지는 주 원인이다. 이달 초 발생한 평택 물류창고 화재와 지난 2020년 ‘이천 참사’도 모두 저온 물류창고를 시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다.

수 차례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그 위험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데도 물류창고 건설 현장에서 샌드위치 패널과 우레탄폼 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압도적인 가성비 때문이다. 강병근 건국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샌드위치 패널 등은 일반 콘크리트 시공에 비해 비용이 10분의 1도 안될 정도로 저렴하고, 공사 기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면서 “업체의 자정 작용에 기대해 화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연성 물질의 사용을 법적으로 막지 않는 한 중대재해처벌법의 ‘뇌관’이 될 거라는 얘기다.

이커머스 산업이 발전하며 물류센터는 최근 수년간 급증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의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 등록된 연면적 1000㎡ 이상 물류창고는 1519곳으로 전년(1304곳) 대비 215곳이 늘었다.

앞서 지난 2016년에는 물류창고 등록 수가 747곳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5년 사이 두배 가량 늘어난 셈이다. 특히 연면적 1만㎡가 넘는 대형 물류창고는 지난 2016년 175곳에서 지난해 414곳으로 136%가 늘며 그 증가세가 더욱 가파르다.

각종 대형 사고 발생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을 계기로 업계에서는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 화재감시자를 배치하는 등 안전대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난연성 소재 사용을 강제하는 등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권현길 한국교통대 교수는 “가연성 물질이 가득한 곳에서 작업을 하면서 관리감독만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안전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라면서 “특히 최근에는 환기도 잘 안되는 저온 대형 물류창고 증설이 늘고 있는만큼, 그 위험성이 더 높아지는 현실”이라고 했다. 권 교수는 “선진국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현장에서는 샌드위치 패널이나 우레탄폼 등의 가연성 소재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난연성 소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쿠팡 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건축물의 중요한 부분에는 가연성 물질 사용을 막는 제도가 곧 시행 예정이다. 오는 2월 11일부터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에 대한 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건축물의 외벽에는 불연재료 또는 준불연재료를 마감재료로 사용해야 하며, 거실의 벽과 천장의 실내에 접하는 부분의 마감재료도 불연·준불연·난연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물류센터 화재 안전 기준을 제정해 오는 6월부터 신축되는 물류센터에는 화재 초기 대량의 물을 방수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또한 실질적인 화재 예방책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초기 화재 진압에는 효과를 발휘할지 몰라도 일단 불씨가 샌드위치 패널 안으로 파고 들면 전소되기 전까진 끌 수가 없다”면서 “이달 초 평택 물류창고 화재도 불이 꺼진 줄 알았지만 패널 안에 파고든 불씨가 재점화를 일으키며 소방관 인명피해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해당 규칙이 기존에 준공된 물류창고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이 되지 않고, ‘가연성 물질 퇴출’은 아니라는 점에서 여전히 화재 위험이 상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연성 물질이 다수 사용된 기존 창고를개·보수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리 건축법은 주거용 건물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만, 비주거용 건물에 대해선 그렇지 못했다”면서 “법 개정 이후에는 이런 취약 물류창고들을 어떻게 할지가 숙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