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 옛 서울의료원 부지를 놓고, 서울시와 강남구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주택 공급 기지로 삼으려는 정부와 서울시의 계획에 자치구가 반기를 든 것이다. 정부가 주택 시장 안정화를 위해 추진 중인 공급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지난 7일 "옛 서울의료원 부지에 대한 서울시의 지구단위변경 열람공고와 관련해 "57만 강남구민을 무시한 처사"라며 서울시의 지구단위변경 열람공고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강남구는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 가능성도 시사했다.

지난 6일 서울시는 강남구청에 '7일부터 14일간 송현동 부지와 삼성동 옛 서울의료원 부지의 맞교환을 위해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위한 열람공고를 실시한다'고 통보했다. 지구단위계획 변경의 핵심은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에 공동주택을 지상연면적의 20%~30% 이내로 계획하도록 지정하는 것이다. 이 땅을 소유하게 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택 공급 사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해주려는 취지다.

정부와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강남구 삼성동 옛 서울의료원 부지는 사실상 아파트촌(村)이 될 전망이다. 우선 옛 서울의료원 북측 주차장 부지 3만1543㎡를 준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해 공공주택을 짓겠다고 작년 8월 4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발표했다.

이어 이번에 문제가 된 옛 서울의료원 남측 땅에도 아파트를 짓도록 한다는 계획이 나왔다. 작년 2월 경영난을 겪던 대한항공은 경복궁 인근에 있는 종로구 송현동 부지 3만7000여㎡를 민간에 매각하려 했지만,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 일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을 밝히면서 매각 작업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갈등을 겪다 송현동 땅과 서울시 보유 옛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 일부를 맞교환하기로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LH가 약 5000억원 규모로 예상되는 매수대금을 대한항공에 지불하도록 하면서, 대신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를 일부 LH에 제공하기로 했다. 결국 북측 부지에 공공주택 3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8·4대책 공급계획이 바뀌지 않을 경우 서울의료원 전체 부지의 약 60~70%가 아파트 밀집 지역이 되는 것이다.

옛 서울의료원 공공주택 건립부지 및 맞교환 부지 현황 사진. /강남구청

이에 강남구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옛 서울의료원 부지에 고밀주거복합지 개발을 추진하려는 것인 반면에 강남구는 영동대로복합개발 등을 통해 삼성동 일대를 국제교류복합지구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각 차가 존재한다.

정순규 강남구청장은 "서울의료원 부지가 고밀주거복합지로 개발되면 앞으로 서울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산업 발전은 요원해진다"면서 "강남구와 사전협의 없이 추진된 열람공고를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강남구는 "정부의 3000호 공급 계획을 철회해야 송현동 부지와 맞교환을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으나 서울시는 예정대로 열람공고를 실시했다. 이에 강남구는 행정소송을 비롯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며 맞섰다. 앞서 강남구민 1만4105명이 공공주택 공급계획 철회 주민민원 서명부를 서울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동안 주택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 공급 확대가 최우선이라고 의견을 내왔던 부동산 전문가 중 상당수도 강남구 의견에 동조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개발을 통해 창출되는 가치와 이익'을 따져 결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개발의 기본인 '최유효이용(Highest and Best Use)' 측면에서 해당 입지 개발 방향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라며 "해당 부지를 임대주택 주거지로 짓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옳은 결정은 아니다"라고 의견을 냈다.

최유효 이용(Highest and best use of property)이란 건물이나 토지를 합리적·합법적·물리적으로 가능한 방법으로 경제적 타당성이 있도록 부동산의 최고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하는 부동산 개발 계획 수립의 기본 이론이다.

심 교수는 "쉽게 말하면, 서울 명동 한복판에다 텃밭을 만드는 것은 국가적 자산 낭비가 되는 것"이라며 "서울이라는 도시는 주택 공급 만큼 중요한 것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고용 확대인 만큼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영동대로 복합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적 상황과 기능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해당 부지를 개발해 더 많은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수익을 어떻게 사회에 배분할지를 중앙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 교수는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강남구의 주장이 더 맞는다고 본다"면서 "애초에 중앙 정부가 지역구와 사전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택 공급 부지를 결정해 밀어붙이니 지역 주민들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곳곳에서 이같은 문제가 생기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급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