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또 반발이 나오면 어떻게 한답니까. 원칙이 없으면 갈등은 더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25일 태릉과 과천의 개발 구상이 확정됐다고 밝히면서 지난해 발표한 8·4 대책 추진이 빨라졌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섬세한 도시 계획 없이 빈 땅에 집만 짓겠다고 달려들면서 갈등만 증폭시키고 결국 정부가 이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이날 나온 대책도 뜯어보면 공급 주택 수만 맞췄고 정교한 도시계획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장 노원구는 친환경 저밀화 개발로 주택공급계획을 세웠는데, 과천은 오히려 용적률을 높이는 등 고밀화 개발에 나서게 됐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 수만 지키는 원칙만 가지고는 추가 갈등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정책 동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장 용산이나 서초 등 다른 지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만큼 문제가 더 복잡하게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원칙 없는 정부… 태릉은 친환경·저밀개발, 과천은 고밀개발

25일 국토교통부가 태릉과 과천의 개발 구상 변경안은 정 반대의 방향으로 수립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장 노원구는 원하던 친환경·저밀개발에 성공했다. 당초 1만 가구의 공급이 예정됐던 서울시 노원구 태릉 골프장 부지에 6800가구만 들어가게 됐다. 이로써 통상적인 공공주택사업지구의 개발밀도보다 낮게 개발 계획이 완성됐다. 통상적으로는 1헥타르(1만㎡)당 198~219명 수준인데 이보다 낮은193명 수준으로 낮아졌다. 예정대로 1만가구가 들어왔다면 1헥타르당 284명 수준이었다.

대신 정부는 대체지에 3100가구를 넣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체지는 수락산역 역세권 도심복합사업(600가구), 노원구내 도시재생사업(600가구), 하계5단지(1500가구)·상계마들(400가구) 등이다. 노원구가 구내 노후 아파트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등을 요구해왔는데, 국토교통부에서 이를 받아들였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녹지비율도 높였다. 공원 등으로 채울 공공주택지구의 녹지율을 40%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기존 택지의 평균 공원녹지율은 25%, 개발중인 100㎡ 이하 중규모 택지의 녹지율이 30%인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이다. 여의도공원 규모에 상응하는 24만㎡ 규모의 호수공원 조성도 약속했다. 공공임대주택은 법정 최소 기준(35%)에 맞춰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과천은 과천청사부지를 지키는 대신 나머지 도시 계획을 고밀화하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당초 국토교통부는 4000가구를 과천청사부지에 지을 계획이었지만 이 계획을 변경하면서 300가구를 추가로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3000가구는 과천지구에, 1300가구는 과천 갈현동 근처 신규부지에 지어진다. 이 과정에서 과천시는 공공주택 용적률을 기존 168%에서 188%로 올려 700가구를 더 마련하고, 주상복합 용지 용적률도 500%에서 600%로 올리기로 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도시 사정에 따라 계획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주택 공급 수에 맞춰서 대안을 마련하다보니 장기적인 도시 계획은 무시된 감이 있다"면서 "주택 공급 수를 맞추고 지역 주민 목소리를 잠재우다보니 정 반대의 도시개발 양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원칙이 없다고 생각되면 갈등이 더 커지게 마련"이라면서 "주택 가구 수와 교통·상하수도·교육·자족도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미흡해서 또 갈등이 생길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날 신규택지로 지정된 경기 과천시 갈현동 일대 모습/연합뉴스 제공

◇ "울면 떡 하나 더 주나… 용산·서초는 어쩌나"

정부가 한 발 물러섰는데도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더 아우성이기도 하다. 노원구는 정부의 태릉골프장 주택공급 계획에 대해 "교통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향후 추진 일정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문을 바로 냈다. 입장문에는 "현재도 화랑로 일대는 상습정체 구역인데 인근 갈매·별내지구에 이어 태릉골프장까지 개발되면 일대 교통 체증은 불 보듯 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과천 시민들도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천청사 자리를 보전했다고는 하지만 '보류' 수준인 것일 뿐, 자족도시 강화를 위해 어떻게 개발하겠다는 도시계획 자체가 없다는 지적이다. 과천시민 김모(41)씨는 "과천지구의 자족용지가 줄면서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이에 대한 국토교통부나 과천시의 입장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교통문제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지적도 있다. 경기 남부권에 서울로 진입하는 남태령 구간은 상습 정체지역이다. 분양 중인 지식정보타운, 과천지구, 신규 대체지역까지 주택이 들어서면 교통난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과천시 중앙동의 한모씨(43)는 "이수~과천 복합터널이나 GTX는 시일이 오래 걸리고, 이렇게 대량으로 주택공급이 늘어나기 직전에 확정된 계획"이라면서 "유료도로인 우면산 터널(과천~서초)도 막히는 마당인데 저 주택이 늘면 앞으로 출퇴근길을 어찌 해야하나 걱정스럽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반발 목소리가 크면 계획을 수정하는 식의 선례가 이미 만들어진 만큼 정책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현재 용산 캠프킴 부지나 서초 조달청 부지 등의 경우엔 정부가 어디까지 양보할 것이냐는 것이다.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용산 주한미군 기지 이전으로 나온 캠프킴 용지에 31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고 논란은 현재 진행 중이다. 태릉처럼 친환경·저밀화 개발에 나선다고 하면 공원을 없애거나 용적률을 높여서는 안 되고, 과천처럼 캠프킴 부지만 지킨다고 하면 부지는 두고 다른 부지를 모색해야 한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8·4 대책이 너무 급하게 발표되면서 없어도 될 진통을 만들었다. 과천과 태릉은 입지적으로 아주 훌륭한 곳이라 주민들과 충분히 상의해서 좋은 공급계획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괜한 선례를 만들었다"고 했다.

한 금융권의 부동산 전문가는 "신규 택지지구라거나, 대체물량 지구에서 갈등이 생기면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의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면서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가 주택 공급에 더 쉬운 방법인데, 정권 철학과 맞지 않다보니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느낌은 여전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