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ESG가 국내외 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ESG 중에서 지배구조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ESG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1939년 부평에서 문을 연 목재소 ‘부림상회’는 1947년 대림산업으로 한 차례 변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1년. 대림산업은 74년 만에 또 한 차례 변신에 성공한다. DL로 간판을 바꾸고 이해욱 회장 체제로 지배구조를 공고하게 한 것이다.

이번 변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순환출자를 해소하면서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냈다. 동시에 큰 잡음없이 지배력도 강화했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쉽지 않은 일인데 두 가지 목적을 잘 달성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사업적으로 변화도 꾀하고 있다. 건설분야에서는 디벨로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건설부문에서 떼어낸 석유화학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DL 사옥 디타워 돈의문. /DL이앤씨

◇ 74년만에 간판 바꿔 달았다…지배구조 정리도 착착

2020년 12월 19일. 대림그룹은 그룹의 지주회사 사명을 DL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대림산업 건설사업부 이름은 DL이앤씨, 석유화학사업부 이름은 DL케미칼로 정해졌다. 74년 만의 변신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2021년을 변화와 정리의 해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DL그룹(옛 대림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5월 DL(지주사)의 유상증자를 끝으로 이해욱 회장→대림(옛 대림코퍼레이션)→DL→DL이앤씨·DL케미칼의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5월 진행된 유상증자가 화룡점정이었다. 이 유상증자로 DL그룹 최상위 지배회사인 대림의 DL 지분율은 기존 21.67%에서 42.3%로 높아지게 됐다. 이해욱 회장 입장에선 2018년 10월 공식화한 대로 계열사간 순환출자 고리를 끊었고, 지배구조도 공고히 했다. 잡음 없이 진행했다는 건 가장 큰 수확이다.

그래픽=손민균

지배구조 개편은 2018년 10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DL그룹(대림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차단하고 2019년 1분기까지 순환출자 구조를 완전히 해소하는 등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의 경영 쇄신 방침을 발표했다. 투명하고 윤리적인 기업 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화답하기 위해서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 지배구조 개편은 대림코퍼레이션의 최대주주인 이해욱 회장의 지배력을 좀 더 강화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당시만해도 이해욱 회장은 대림코퍼레이션을 중심으로 대림산업을 간접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열사간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변화를 꾀하는 것이 가장 쉬운 선택지였지만 무리가 따랐다. 이미 선례가 있는 기업들마다 시비가 일어난 탓이다. 이에 DL은 작년 9월 물적분할과 인적분할로 지배구조의 변화를 꾀하기로 했다.

인적분할은 기존회사(A)를 지주회사(B)와 신설 사업회사(C)로 나누고, 기존회사의 주주들에게 지주회사와 신설 사업회사의 주식을 각각 갖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물적분할은 지주회사가 신설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한다. 신설회사가 완전히 지주회사의 종속 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대림그룹은 우선 건설사 대림산업을 분할했다. 기존 대림산업을 존속법인인 지주회사 디엘과 건설사업을 담당하는 디엘이앤씨(대림산업의 건설사업부), 석유화학회사인 디엘케미칼(대림산업의 석유사업부)로 분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선 지주회사 전환을 더는 미룰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과세이연의 혜택을 보려면 2021년 12월 31일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지주회사 전환은 이사회에 안건을 상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최소 9~10개월이 소요된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지주회사 부문 애널리스트는 “정부는 지주회사 설립·전환을 위해 주식 현물을 출자할 때 주는 과세특례를 지난 2000년 신설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과세 특례를 적용받으면 양도소득세 등을 아낄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DL은 지주회사 전환을 더 미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 분할 이후로도 숙제는 있었다. 인적분할 특성상 대림은 DL과 DL이앤씨 지분을 동일하게 21.67%씩 들고 있었다. 대림이 보유한 DL이앤씨 주식을 어떻게 DL에 넘길 것인지가 과제였다. 이에 DL은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DL이앤씨 주식과 DL 주식을 교환하기로 한 것이다. 대림은 DL에게 회사가 가지고 있던 DL이앤씨 보통주 전량(419만5039주)을 현물로 출자해 DL 신주 551만4601주를 받았다. DL이앤씨와 DL 보통주 교환비율은 DL이앤씨 보통주 1주당 DL 보통주 1.3주였다.

이 유상증자에는 거의 대림만 청약에 참여했다. DL 지배력을 높일 필요성이 있는 대림을 제외하고는 시세보다 약 20% 낮은 가격으로 DL이앤씨 주식을 내놓을 유인이 적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DL은 DL이앤씨 보통주 공개매수 가격을 1주당 11만8085원으로 정했는데 청약 마지막 날이던 5월 10일 DL이앤씨 종가는 14만1000원이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현물출자 유상증자로 대림의 DL 지분율이 42.3%까지 상승했다”면서 “비교적 잡음없이 성공적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한 사례”라고 했다.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 이해욱 시대엔 석화사업 주목

새롭게 짜여진 DL그룹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업은 석유화학 부문이다. 이해욱 회장이 석유화학사업 분야에 갖는 애정은 남다르다. 경영수업을 받으며 맡은 첫 산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해욱 회장은 1995년 대림엔지니어링에서 첫 발을 내딛었다. 또 석유화학부문을 키운 공로를 명분으로 2011년 대림산업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르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석유화학부 사업을 DL케미칼로 따로 떼낸 것에 대해 눈치보지 않고 투자해서 사업을 키우겠다는 이해욱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지배구조 개편 전까지는 석유화학부문이 대림산업의 사업부로 있었다. 건설에서 벌어온 돈을 석유화학사업에 투자한다는 점에 불만을 갖는 주주들의 목소리도 컸다.

하지만 기업을 분리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지주사 DL은 최근 100% 자회사 DL케미칼에 유상증자를 통해 4500억원을 투입했다. 이에 DL케미칼의 자본은 1조2000억 원에서 1조6500억원으로 늘었다. DL그룹 관계자는 “유상증자로 늘어난 자본을 활용해 친환경소재 등 특수소재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했다.

DL케미칼이 미국 렉스텍과 합작법인을 설립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진행된 일이다. DL케미칼과 렉스텍은 여수 석유화학단지에 1500억원을 투자해 연간 4만톤 규모의 핫멜트 접착소재인 무정형 폴리알파올레핀(APAO) 및 접착제 생산공장을 건설해 운영하기로 했다. DL케미칼은 합작법인의 지분 74%를 보유하기로 했다. 핫멜트 접착제는 열로 녹여 붙일 수 있는 접착제로 기저귀, 생리대 등 위생용품과 자동차 내외장재의 접착 및 각종 산업용품의 조립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건설사업의 내용도 변하고 있다. 해외 플랜트 사업 비중을 줄이고 디벨로퍼(시행사)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DL이앤씨의 해외 플랜트 사업 부문 인력은 2018년 1576명에서 올 1분기 기준 1293명으로 20% 가량 줄었다. 2010년대 초반 플랜트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이례로 위험 부담이 큰 사업은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인 셈이다. 현재 DL이앤씨의 영업이익 중 90%가 주택사업에서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애써 얻은 해외 사업 노하우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데 비중을 축소하는 것은 아쉽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디벨로퍼로서의 변신은 눈여겨볼 점이다. 이미 DL이앤씨는 디벨로퍼로서 성공한 사례를 갖고 있다. 과거 피맛골 자리에 세워진 광화문 D타워를 광화문 인근 직장인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변신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숲에 들어선 하이엔드 주거단지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도 DL그룹의 작품이다. 1980년대까지 뚝섬 일대에 있던 경마장이 옮겨지고 뚝섬 지구단위계획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됐던 빈 땅을 DL이앤씨가 낙찰받아 최고급 주상복합 단지로 탈바꿈했다.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는 49층 규모 주거시설 2개 동과 33층 규모 업무시설, 문화시설, 판매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DL이앤씨는 최근 한남동에 드림하우스 갤러리를 만들어 디벨로퍼로서의 이미지를 각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존 주택과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빛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체험을 방문객에게 선사한다. 또 거주자 동선 위주의 주택 평면을 직접 체험하게끔 도와준다. DL이앤씨 관계자는 “드림하우스 갤러리에 소개된 주택 평면 중 일부는 하남 강일지구에 시공되기도 했다”면서 “디벨로퍼의 핵심은 땅과 건물에 상상을 더하고, 이를 현실로 이끌어내는 능력인데 이를 차근차근 다져 나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