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선(78) 중흥건설그룹 회장은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매일 직원 2명을 불러 회사 주변 식당으로 향한다. 7000원짜리 백반으로 점심을 먹으며 직원들과 대화를 하는 것. 정 회장이 19살의 나이에 목수로 건설업에 뛰어든 이후 함바집에서 밥을 먹던 습관을 이어간 셈이다. 정 회장이 주로 입는 옷은 회사에서 맞춘 근무복. 근검절약이 몸에 밴 정 회장은 10년쯤 된 근무복을 계속 입고 있다고 한다. 그런 정 회장이 이제 20조원짜리 회사를 아우르는 대기업 회장으로 거듭나게 됐다. 중흥건설그룹은 대우건설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중흥은 재계 서열 20위권 회사가 된다.

5일 KDB산업은행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지난 2일 실시한 대우건설 매각 재입찰에서 중흥건설 컨소시엄은 2조1000억원 안팎을 써내면서 DS네트웍스 컨소시엄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중흥건설이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하면 정 회장의 희망대로 단숨에 재계 20위권으로 도약하게 될 전망이다.

정창선 중흥건설그룹 회장

1943년 광주에서 태어난 정창선 회장은 19살 현장직인 목수로 건설업에 발을 들였다. 청년 시절 건설 공사 현장에서 알게 된 지인들과 1983년 세운 회사가 중흥건설의 뿌리 금남주택이다.

그는 1989년 중흥건설을 세우고 1993년 중흥종합건설, 1994년 세흥건설을 각각 설립해 세를 확장했다. 현재 30여개 주택·건설·토목업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건설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중흥건설그룹은 2015년 처음으로 대기업집단인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됐다. 당시 대기업 집단 선정 기준은 대차대조표상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었다.

정 회장은 새 주인을 찾아야 하는 대우건설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정 회장은 작년 1월 기자간담회에서 “3년 내 4조원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1조원 이상을 들여 대기업 한 곳을 인수한 뒤 나머지 3조원은 운영자금으로 사용해야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대기업 인수 구상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인수할 대기업을 생각하고 있다. 내가 경험이 없는 제조업보다는 ‘대우’ 등 해외사업을 많이 하는 대기업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대우건설 인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자수성가형 사업가인 정 회장은 ‘비(非)업무용 자산은 사지 않는다’‚ ’보증은 되도록 서지 않는다’, ‘적자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는 수주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 원칙’ 하에 자금 관리에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책상 위엔 회사의 현금흐름표가 붙어 있다고 한다. 3년간의 자금 계획을 미리 짜고 3개월마다 이를 확인한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무리한 투자보다는 안정적 수익과 꼼꼼한 자금관리를 중시하는 그의 경영 철학을 고려할 때 이번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중흥이 시장의 예상가보다 많은 인수가를 제시한 것은 다소 과감한 배팅인 셈이다. 건설업계에서 중흥건설과 미래에셋이 무리하게 인수전략을 세운 것 아니냐고 해석하는 이유기도 하다.

중흥의 성장을 이끈 사업 방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도시 등 공공택지를 매각할 때 계열사 여럿을 동원하는 이른바 ‘벌떼 입찰'이었다. 공공택지 공급은 한 회사당 하나의 필지에 하나의 입찰권만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부분 추첨제를 통해 낙찰자를 정해왔다. 중흥을 비롯한 중견 건설사들은 다수의 계열사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낙찰 확률을 높였다. 대우건설과 같은 대기업들은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중흥그룹의 사세 확장과 승계 작업에 핵심 디딤돌이었던 수많은 계열사가 앞으로는 풀어나가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현재 중흥그룹 내 중흥건설, 중흥주택, 중흥건설산업, 중흥토건, 중흥에스클래스, 순천에코밸리, 중흥산업개발, 중흥개발, 중봉건설, 중봉산업개발, 제이원산업개발, 세흥산업개발, 다원개발, 새솔건설, 중흥엔지니어링, 세종이엔지, 나주관광개발, 세종건설산업, 신대웨딩홀, 중흥종합건설, 세종중흥건설, 청원건설산업, 최강병영, 영담, 남도일보, 브레인시티, 프로젝트금융투자, 에스엠개발산업, 중흥하나제1호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 세흥건설, 헤럴드, 헤럴드에듀, 부산글로벌빌리지, 바이오타, 헤럴드아트데이, 헤럴드팝 등이 있다. 주택, 건설 토목 뿐만 아니라 통신, 관광, 언론 등의 분야로 사업 다각화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정창선 회장의 후계 구도를 보면 장남 정원주 중흥건설 그룹 부회장과 차남 정원철 시티건설 회장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 실태 조사에서 중흥건설그룹은 조사 대상 60개 기업집단, 1779개 기업 중에서 두 번째로 내부거래가 높게 나타났다. 당시 중흥건설의 내부 거래 비중은 27.4%였다. 중흥건설 최대주주인 정창선 회장의 지분율은 76.7%, 그 다음 장남 정원주 부회장이 지분 10.9%갖고 있다. 또 정원주 부회장은 중흥토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비즈DB

장남 정원주 사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중흥토건의 매출액 상당 부분이 정창선 회장이 대주주인 중흥주택 등 관계사에서 나왔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공공택지 추첨으로 낙찰받으면 낙찰 공급가격 이하로 다른 업체에 전매할 수 있는 특례조항의 빈틈을 활용해 그룹 계열사가 오너 일가의 지분이 많은 회사에 일감을 지원했다는 의심도 나온 바 있다.

차남 정원철 회장이 이끄는 시티건설(옛 중흥종합건설)은 중흥건설그룹의 계열사였으나, 중흥건설에서 독립해 계열분리 작업을 2019년에 마무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배구조가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대우건설 인수 후에도 중흥그룹의 계열사 간 경영 투명성과 복잡한 지배구조가 문제시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중흥그룹의 자산총액은 9조2070억원이다. 중흥그룹의 주요 건설사인 중흥토건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15위이고, 중흥건설은 35위로 중흥토건이 더 앞선다.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할 경우 중흥그룹의 자산총액은 19조540억원으로 재계 서열 20위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