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주도로 사업을 계획하고 민간기업이 시공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도심복합사업)에 무려 9곳이 후보지로 지정되면서 ‘최대 수혜지구’로 꼽혔던 은평구에서 주민 동의율 67%를 채운 지구가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67%는 본지구로 지정되기 위한 필수 사업요건으로, 이 조건을 만족시킨 지구는 사업에 착수할 수 있게 된다.

4일 은평구에서 후보지로 지정된 9곳을 취재한 결과 지난 2일 기준 5곳에서는 주민동의율이 5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31일 1차 후보지가 발표된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두 달만에 절반 이상의 주민 동의를 얻은 셈이다.

도심복합사업은 2·4 대책에 담긴 ‘공공주도 3080+’의 사업 중 하나다. 토지주와 민간기업, 지방자치단체가 도심 내 입지가 우수한 곳에 재개발 사업을 제안하면, LH 혹은 SH가 국토교통부와 적정성을 검토한 후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공사에 현대건설·GS건설 등 1군 브랜드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 LH·SH와 지자체, 국토교통부가 사업 검토와 인허가 과정에 함께 참여해 사업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은평구 수색4재정비촉진구역의 한 건물에 이주 진행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후보지 3곳은 동의율 67% 넘어… 나머지 중 4곳도 40% 이상

1차 발표 당시 은평구에서는 두 가지 방식의 도심복합사업으로 나뉘어 후보지가 선정됐다. 역세권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상업고밀지구 4곳(연신내역, 녹번역, 새절역 동·서편)과 저층주거지를 대상으로 하는 주택공급활성화지구 5곳(녹번동 근린공원 인근, 불광근린공원 인근, 수색14구역, 불광동 329-32 인근, 증산4구역)이다. 도심복합사업은 역세권과 저층주거지, 준공업지역 등 3개 유형으로 나눠 진행된다.

조선비즈 취재 결과 전체 9개 지구 중 3곳(수색14구역, 증산4구역, 불광 근린공원 인근)은 이미 67% 이상의 동의율을 확보해 본 사업지 지정요건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증산4구역이 가장 먼저 동의율 67%를 넘어섰고, 수색14구역, 불광 근린공원 인근이 뒤를 이었다.

나머지 사업 지구 중에서도 4곳은 40%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각 지구의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은 새절역 주거상업고밀지구 2곳(새절역 동·서편)을 제외하면 연신내역 인근은 주민의 62%가 동의했고, 녹번역은 50%가 동의했다. 불광동 329-32지구는 40% 이상, 녹번동 근린공원 인근은 45%를 달성한 상태다.

은평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아직까지 본 지구 지정요건을 충족한 사례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진행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도심복합사업은 사업성 검토를 거쳐 후보지를 선정한 뒤 사업설명회 등을 통해 주민동의율 10%가 충족되면 예정지구로 지정되고, 이후 주민동의율 3분의 2를 충족하면 본지구 지정요건을 갖추게 된다. 주민들의 높은 호응에 힘입어 은평구는 도심복합사업의 첫 수혜지구가 됐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도심복합사업은 3년 한시로 정해진 기한이 있는 사업인 만큼, 주민 동의율을 빨리 달성하면 향후 안정적인 진행이 가능할 것”이라며 “또 지금은 사업 홍보 과정이라 인센티브를 많이 줬지만, 사업이 잘 진행되면 이를 줄일 수도 있어 빨리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했다.

◇ 절차 빠르고 공공기여분 적어… ”찬성표 쉽게 얻었다”

은평구 주민들이 도심복합사업에 큰 호응을 보이는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재개발 사업들이 진행됐지만 수차례 고꾸라졌던 경험이 쌓인 결과다. 3호선과 6호선이 통과하는 은평구는 2002년 은평뉴타운 사업 시작 직후부터 개발가능성이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꼽혔다. 이후 지역주택조합 혹은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재건축·재개발 시도가 있었으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번번히 좌초됐다.

지난해 4월 아현동 일대 재개발 현장 모습

은평구를 들썩이게 했던 사업들이 결실을 맺지 못하자 주민들은 행정절차가 단축되는 공공 주도형 재개발로 눈을 돌렸다. 마침 정부가 시공은 민간에게 맡기고 사업시행을 공공기관에서 주도하는 도심복합사업을 내놓자 피로감에 지친 주민들이 동의한 것이다. 국토부 설명에 따르면 도심복합사업은 제안부터 입주까지 5년이 소요돼 민간 재개발(13년 이상 소요)보다 사업기간이 짧다.

주민들 절반이 동의한 녹번역 지구의 김진기 추진위원장은 “우리 지역은 이전에 재개발한다고 해서 주민들에게 80% 동의서를 받아놨는데, 3월에 도심복합사업 후보지로 발표되면서 이쪽으로 갈아타서 동의서를 새로쓰면 되기 때문에 찬성표를 쉽게 얻었다”고 설명했다.

공공 주도로 사업이 진행되면서도 공공재개발과 달리 공공기여분이 적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공공재개발은 조합원분양분을 제외한 50%는 공공임대·공공지원임대·지분형주택으로 활용되지만, 도심복합사업은 기존 가구의 1.3배 이상을 건축하면서 이 중 20~30%만 공공자가·임대로 쓰인다. 기부채납도 규모제한과 관련된 조항이 없는 공공재개발과 달리 15% 제한을 뒀다.

◇ 월세 받는 임대사업자는 반대… ”끊기는 수입 어쩌라고”

그러나 도심복합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주민도 여전히 적지 않다. 주로 상가나 빌라와 같은 소유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하고 있는 임대사업자들이다. 이들은 재개발이 시작돼 거주지를 옮기게 되면 임대수입을 받을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대표적인 곳이 역세권 후보지인 새절역 동편과 서편이다. 이 지역은 임대인들이 많아 장기간 재개발로 수입이 끊기는 것을 반기지 않는 편이다. 이로 인해 후보지로는 지정됐지만, 사업 진행에 큰 관심이 없거나 주민설명회도 가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새절역 인근 A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새절역 동·서측은 주로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상가건물 입주자가 많아서 재개발을 반기지 않는 편”이라며 “개발 기간동안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를 받지 못하는데 아파트 몇 채 받아서 손해가 충당되겠나”라고 했다. B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사업 면적이 컸다면 개발수익이 높아 괜찮을 텐데 양쪽이 다 크기가 작다보니까 동의율이 낮은 측면도 있다”고 했다.

또 재개발 과정에 집값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해 높은 가격에 소유권을 팔려는 사람들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도심복합사업은 토지수용방식으로 진행돼 부지확보 단계에서 거주민들이 소유권을 공공기관에 넘겨야 한다. 사업 완료 후 입주할 때 소위 ‘딱지’로 불리는 우선 입주권을 받는 방식다. 그 사이에 집값이 더 오르더라도 매매가 불가능하다. 관리처분 방식으로 진행, 입주시까지 소유권이 소유주에게 있어 오른 가치가 반영되는 공공·민간재개발과는 다르다.

은평구 갈현동 C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도심복합사업의 경우 LH나 SH가 땅을 일단 다 매입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재개발이 시작되면 투기꾼들이 많이 들어와서 분양가가 높아지는데, 좋은 위치에 땅이 있거나 소유지가 넓은 분들은 매매가 제한되니 반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신내역 인근 D공인중개사 관계자는 “한 사람이 빌라 4채를 갖고 있어도 공공주도 재개발에서는 입주권이 하나밖에 안나온다. 건물을 여러채 갖고 있는 사람은 수익성이 좋지 않아 반대한다”고 언급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토지나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 입장에서도 수익률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지자체 의견을 받아들여서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주민들이 사업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어떻게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지를 충분히 안내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