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시장에 공급 부족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지난해와 같은 전세대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로 인한 타격이 회복되기도 전에, 임대 시장의 원활한 수급을 가로막는 직·간접적인 규제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전세 매물 부족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5월 9일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 /연합뉴스

12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5월 첫째 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전주(146.4)보다 5.2포인트(P) 오른 152.0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전국 전세수급지수가 2.1포인트(P) 오르는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상승 폭이 두배 이상 크다. 전세수급지수는 일선 공인중개사들에게 전세 수요와 공급 중 어느 쪽이 많은지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한 지표다. 0~200 범위에서 기준점인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 부족’ 비중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여당이 임대차3법을 본격 추진하던 지난해 6월부터 ‘고공행진’을 시작해 10월말 195.3으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등으로 인한 전세 매물 부족이 가을 이사철과 맞물리며 전셋값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올해 들어서는 전세 시장이 점차 안정화되며 4월 첫째 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37.3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세 공급이 부족하다’는 중개업소 응답 비율이 한달 새 14.7P나 오르면서 또다시 불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임대차법 시행 직후였던 지난해 7월 넷째 주부터 8월 넷째 주까지도 ‘공급 부족’ 응답 비중은 한달 간 10P 오르는데 그쳤다.

전세 거래량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의 전세 거래량은 8439건으로 전년 동기(1만59건) 대비 약 16.1% 감소했다. 3월은 원래 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 계약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성수기지만, 올해에는 2017년 10월(7634건) 이후 3년 5개월 만에 전세 거래가 가장 한산했다.

임대차 거래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드는 반면, 월세(월세+준전세+준월세)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3월 월세 비율은 전체의 31.5%로 전년 동기(28.4%)보다 3.4%P 올랐다. 아직 집계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4월에는 월세 비중이 전체의 57.1%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민간 전세주택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민간 임대사업자가 지난해 7·10대책으로 사실상 폐지됐다는 점이다. 민간 임대사업자를 통해 새롭게 유입되는 전세 물량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게다가 법인 임대사업자에게는 무조건 법정 최고 종부세율(6%)을 적용하고 기본 공제를 없애 임대를 유지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도록 했다.

최근 여당은 임대사업자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기존 사업자의 세제 혜택까지 축소하는 소급 형태의 입법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에 주거용 오피스텔을 업무용으로 전환하는 임대사업자까지 생겨나는 상황이다.

임대사업자가 아닌 일반 다주택자도 전세 집주인 역할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공시가격 상승과 종부세율 인상으로 보유세 부담이 커진 데 더해, 전세 보증금에 대해서도 매년 세금을 물게 될 전망이어서다. 전월세신고제가 시행되면 전세 보증금에 이자율을 곱한 ‘간주 임대료’에 매기는 소득세를 피할 수 없어진다. 가만히 있으면 전세금만 까먹는 상황이다보니,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는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재건축 및 분양 아파트에 대해 실거주 요건이 대폭 강화된 점도 전세가 나올 수 없는 이유다. 재건축 아파트는 학군과 교통여건 등 양호한 인프라를 비교적 저렴한 보증금에 살 수 있는 전셋집으로 수요가 꾸준했지만, 최근에는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살려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 올해부터 재건축 조합원으로 주택을 소유해도 분양신청까지 2년 실거주 하지 못하면 조합원 자격 상실 및 분양신청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최근 몇달 간 전셋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과천시처럼, 보통 신규 입주 물량이 급증한 지역은 전세 시장이 안정세에 접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수도권 아파트는 아예 전세를 놓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개정 주택법에 따라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는 최소 2년에서 최대 5년까지 의무 거주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LH의 강제 수용 대상이 되고 만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금 인상분을 월세로 받겠다는 임대인이 늘며 전세 매물이 줄어드는 상황”이라면서 “재건축 이주 수요와 방학 이사 수요 등이 맞물리는 여름철에 전세 시장 불안이 다시 한번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