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370가구지만 앞으로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그놈의 ‘도시재생’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열렸다는 것만 해도 반갑죠.”

지난 29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만난 김모(64)씨는 “전임 시장 시절 도시재생 예산 100억원을 썼다고 하는데 도로 몇 개 포장한 것 외에는 뭘 해줬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동안 건축 허가를 잘 내주지 않아 동네가 거의 ‘슬럼’이 됐고, 기다리다 지쳐 떠난 주민들도 많다”고 말했다.

4월 29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 전경. /최상현 기자

이 일대는 낡은 연립주택이 빽빽히 들어서있었고, 그 사이로 차량 진입이 어려운 좁은 길이 어지럽게 나있는 모습이었다. 노후도가 84.7%에 달하지만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이라는 이유로 정비사업이 번번히 막혀왔고, 지난 1월 공공재개발 공모에서도 탈락했다.

그러나 이날 국토교통부가 가리봉동 134번지 일대를 서울에서 유일하게 ‘주거재생 혁신지구’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하면서 주민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토부는 이 지역에 입지규제최소구역 지정과 용도지역 상향 등의 특례를 적용해, 주택 370가구와 근린생활시설 등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경기 수원·안양과 인천, 대전 등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 내에서 총 7곳의 주거재생 혁신지구 선도사업 후보지가 선정됐다. 마찬가지로 노후·불량도가 심각한 지역에 사업성 인센티브를 제공해 전국에 3700가구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후보지 공개 이후부터 본지정을 확정할 때까지 사업 대상지 및 인근 지역의 부동산 거래를 조사해 투기 수요를 철저히 가려낼 방침이다. 그러나 인근 공인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번에도’ 투기 수요는 한발 빨랐다.

가리봉동 제일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이번 달에만 빌라가 60여건이나 거래됐고, 가격도 1억2000만원 하던 것이 1억 7000만원까지 뛰었다”면서 “개발 호재를 알고 온 사람들 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다 막겠나”면서 “중요한 건 한번 물꼬가 트였으니 함께 도시재생으로 묶인 인근 지역도 가능성이 높아질거란 점이고, 여기 주민들은 재개발이 되기만 하면 거의 100% 동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4월 29일 서울 양천구 목4동 일대 전경. /최상현 기자

같은 날 방문한 서울 양천구 목4동 일대도 개발 기대감에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이 지역은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 후보지로 선정된 곳이다. 정목초등학교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던 정모(35)씨는 “‘몇년만 참고 살아야지'하고 들어왔는데, 목동 아파트가 굴러 들어올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니냐”면서 “전세로 들어오지 않고 매매를 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반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가 있다는 한모(37)씨는 “당장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은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계속 살 생각이어서 걱정도 된다”고 했다.

이 일대는 빨간 벽돌의 낡은 빌라와 대리석 외벽이 반듯한 신축 빌라가 거의 반반씩 섞인 모습이었다. 교육 특구인 목동답게 빌라 저층에 공부방이나 교습시설이 자리한 경우가 많았고, 골목마다 책가방을 메고 오가는 아이들로 부산했다.

인근 J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생활 환경은 조금 불편해도 목동 학군이고, 아파트에 비해 훨씬 싸기 때문에 전세로 사는 학부모들이 많다”면서 “전세 수요가 많다보니 신축 빌라가 계속 지어져 정비사업이 추진되긴 어려웠던 곳”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날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 20곳을 발표했다. 서울에서는 11곳이 선정됐고, 공급 규모는 약 1만370가구다.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 용적률·용도지역 상향 등의 특례가 적용된다. 기존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에 비해 노후도 요건이 완화된 것도 장점이다. 기존에는 전체의 ⅔가 노후 건축물이어야 사업이 가능했지만,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은 전체의 ½ 이상 노후도만 충족하면 지정할 수 있다.

4월 29일 서울 양천구 목4동 한 연립주택에 LH가 걸어놓은 현수막. /최상현 기자

다만 이곳은 가리봉동과 달리 매물 자체가 적어 거래가 계속 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목4동 H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후보지 내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블럭도 있다”면서 “전세가율도 높고, 개발되면 가치가 큰 지역이라 팔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토부의 이번 대책에 대해 실질적인 공급 효과는 적다면서도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노후 건축물을 최대한 보존하고, 재건축·재개발은 사실상 배제했던 기존 도시재생 기조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도 “대규모 재개발·재건축과 같은 공급 효과는 없겠지만, 대신 집값 상승을 크게 부추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장일단이 있다”면서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계속 쌓이다 보면 시장 안정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