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회장이 3년 만에 제 자리로 돌아왔다. 배임·횡령 혐의로 복역했던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형기가 만료됐지만 5년간 취업이 제한돼 경영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 회장이 자리를 비운 동안 부영은 위기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력 계열사인 부영주택은 적자로 전환했고, 사업 확장을 위해 사두었던 서울내 알짜배기 땅들은 수년째 공터로 남아있다. 사실상 이 회장 1인 경영체제였던 부영이 그의 복귀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건설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중근 부영그룹 창업주/부영그룹 제공

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이중근 회장은 회장 취임식을 갖고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2020년 10월 회장직에서 내려온 지 약 3년 만이다. 올해 광복절 특별사면에는 기업인 12명이 포함됐는데, 그 중 한 명이 이 회장이었다. 그는 취임식에서 “대내외적인 경제적 어려움 속에 신속하고 치밀한 의사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할 때”라면서 “부영그룹은 국민을 섬기는 기업으로 책임 있는 윤리경영을 실천해 국민들의 기대에 보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에서는 특별사면 보름 만에 이 회장이 복귀하게 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이 자리를 비운 3년 동안 부영은 추락세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핵심 주력 회사인 부영주택은 지난해 161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 전환했고,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35위에서 93위로 추락했다. 2017년 시공능력평가 순위 12위까지 오른 적 있었던 회사다. 지주사인 부영도 매출이 6623억원으로 1년 전 대비 반토막 났다. 부영그룹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재계 순위에서 22위를 기록,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지난 2월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출신인 이희범 회장이 취임을 했지만 이 회장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었다. 이 회장은 지주회사 부영의 지분 93.79%를 보유하고 있다. 또 부영은 핵심 계열사인 부영주택을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10원 단위까지 직접 결재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이 회장의 그룹 장악력은 막강한 수준이다. 3년 간의 경영 공백을 채우고 신(新)사업을 빠른 속도로 추진해 부영을 위기에서 구해낼 지에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호텔·테마파크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사들인 서울의 알짜배기 땅들은 수 년 째 공터로 남아 있다. 이 회장은 임대주택을 주력사업으로 해 회사를 성장시켜왔지만 신사업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표명해왔다. 호텔을 짓기 위해 2009년 서울 성수동 서울숲 부지와 2021년 중구 소공동 부지를 사들였다. 금천구에는 대형종합병원을, 인천 송도에는 테마파크 사업을 위해 대형 부지를 마련했다. 모두 지금은 빈 땅으로 버려지다시피 한 상태다.

용산의 아세아아파트 부지는 9년째 공터다. 2021년 6월 착공 예정이었으나 첫 삽 조차 뜨지 못했다. 대지면적 4만6524㎡(1만4073평) 규모의 부지에 지하 3층~지상 최고 32층, 13개동, 아파트 969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그 중 150가구가 미국 대사관 숙소로 쓰이게 된다. 부영은 대사관 측이 비상계단 설치 등 설계변경을 요구해 사업이 지체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부동산 경기 등을 이유로 분양 시점을 재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최근 미국 대사관 측에서 설계변경 요구를 철회하고 원안대로 조속히 착공해줄 것으로 서울시에 요청한 상황이다.

광복절 특별사면을 앞두고 한동안 이 회장의 개인적인 기부행보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룹 차원에서 국내외에 기부한 금액 1조원 외에 그가 개인적으로 고향 사람들과 동창 등에게 기부한 금액은 2650억원에 이른다.

일부에서는 이 회장이 83세의 고령임에도 아직 승계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회장은 3남 1녀를 두고 있지만 후계 구도는 불투명하다. 이성훈 부영주택 부사장, 이성욱 부영 전무, 이성한 부영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등 세 명의 아들은 직함만 가지고 있을 뿐 그룹 경영에는 깊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막내 딸인 이서정 부영주택 전무가 2021년 지주사 사내이사에 선입됐고, 계열사인 동광주택산업, 동광주택, 오투리조트 등 부영그룹 계열사에서 사내이사를 맡게 되면서 후계자로 지목된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