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16일 단독 오찬이 4시간 만에 돌연 취소됐다. 정권교체기 신·구 권력이 충돌하는 모양새다. 협치를 강조해 온 윤 당선인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지난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무협의 이어가지만...정권 이양 충돌 모양새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낮 12시 청와대 상춘재에서 단독 오찬을 하기로 했다가 이날 오전 8시쯤 취소 공지를 냈다. 양측은 "오늘 예정됐던 회동은 실무적인 협의가 마무리 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기자들에게 공지했다. 이날 회동이 이뤄졌다면 두 사람의 대면은 윤 당선인이 지난 2020년 6월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를 찾은 뒤 21개월만이었다.

이번 회동은 전날 발표됐다. 배석자 없이 두 사람만의 만남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정치권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회동 개최와 관련한 실무협의는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윤 당선인 비서실장이 해왔다.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회동이 무산된 이유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문제를 놓고 양측의 견해차가 있어 신경전에 돌입한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평가되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동반사면 여부도 또 다른 충돌 지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되사와 김 전 지사의 동반사면 카드가 제시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아울러 임기를 마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 문 대통령 임기 말 인사 관련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도 회동 무산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전날 윤 당선인 측이 공기업 인사에 대해 '협의'를 요청하자 청와대는 "임기 내 주어진 인사권은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불쾌감을 표출한 바 있다.

앞서 윤 당선인 공약인 '민정수석실 폐지'를 놓고서도 기싸움이 벌어졌다. 윤 당선인은 최근 인수위원회 차담회에서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신상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했다. 특정 정권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검찰총장 재직 시 민정수석실과 잦은 갈등이 있었던 만큼 현 정부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현 정부에서 하지 않았던 일들을 들어 민정수석실 폐지의 근거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아보인다"고 공개적으로 맞선 바 있다.

장제원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실무협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라며 "연기된 이유는 서로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당초 저희가 전날 실무협의를 마무리하고 일정을 공개하기로 했는데, 어느쪽인지는 모르겠는데 일정이 공개가 됐다"며 "우리는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회동하자고 얘기를 했지만, 실무협의를 하는데 아직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조율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요청이 걸림돌이었냐'는 질문에는 "사면 결정권한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 그런 것으로 충돌하는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전날 라디오 출연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에 대해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언급하고 이에 여권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도 이번 회동 연기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측에서는 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인 김오수 검찰총장의 거취를 두고 국민의힘 측에서 압박을 모양새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가운데)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부위원장, 원희룡 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뉴스1

◇'협치' 시험대 오른 윤석열

앞서 윤 당선인 측에서는 이날 회동에 대해 '국민통합과 화합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브리핑에서 "윤 당선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요청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견지해왔다. '국민통합과 화합의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장 비서실장은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오늘 청와대 측과 다시 만나서 논의를 하시나"는 질문에는 "시간을 좀 주시죠"라고 했다. '청와대 측에서 남은 인사권을 모두 행사하겠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에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10일 문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 당선인에게 먼저 전화 "효율적으로 정부를 인수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윤 당선인도 "많이 가르쳐 달라"고 화답하면서 국정현안에 대한 철학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협치'가 기대돼 온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회동 연기가 '윤석열의 협치'가 초반 초반 시험대에 오른 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 정치학과 교수는 "정권교체기 신·구 정권간 '힘싸움'이 본격화하면서 문 대통령 측이나 윤 당선인 측이 공언했던 정부의 원활한 인수인계 역시 차질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며 "차기 정부의 초반 국정운영 동력 확보에도 부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어 양측의 원할한 조율이 절실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