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4일 당의 선거대책위원회 개편을 둘러싼 혼란과 관련해 자신의 책임을 제기하는 당내 목소리에 대해 “저는 말을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조심들 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날 의원총회에 이어 이날 중진·재선 의원 모임에서 ‘당을 이 꼴로 만든 것은 이준석’, ‘해당행위’ 등의 발언이 쏟아지자 “공식적으로 제기되면 답변하겠다”면서 말을 아끼던 이 대표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2년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 소속 중진 의원 모임에서 최근 이 대표의 궤적이 비정상적이라는 발언도 나왔다’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그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2 경제계 신년인사’에 참석한 뒤 집무실로 들어가던 길이었는데, 행사 직후 유사한 질문을 받았을 때와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행사 직후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날 재선, 중진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당내 갈등에 대한 이준석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는 질문에 “결론이 나서 공식적으로 제기되면 답변하겠다”면서 “누가 했는지도 불분명한 말들에 답변을 하게 되면 당이 혼란스러워진다”고만 했다.

당내에서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은 이 대표가 선대위 내부 갈등으로 상임선대위원장 겸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직을 사퇴한 뒤 선대위 운영을 비판하며 쇄신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사퇴 이후 ‘윤핵관(윤석열 대선 후보 측 핵심 관계자)’ 문제를 지적하거나, ‘윤 후보는 지금 속도로는 이길 수 없다’, ‘득표 전략도 감표 전략도 없다’ 등의 지적을 했다. 그러면서 내홍이 커졌고, 윤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전날(3일) ‘선대위 전면 해체’를 들고 나섰다. 당내 일각에선 이렇게 된 데는 이 대표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이날 오전 송석준 의원을 비롯한 당내 의원 11명은 당에 의원총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했다. 소집 사유는 ‘당 쇄신 방안 논의 및 대선 승리 전략 모색’이었지만, 이 대표에 대한 당내 혼란 책임을 묻고 전날 사퇴를 표명한 김기현 원내대표에 대한 복귀를 요구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내대표가 소집 요구서를 제출한 의원들을 설득하며 최종적으로 의원총회는 열리지 않았지만, 이 대표를 향한 당 소속 의원들의 불만이 상당한 것이다.

한 초선 의원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김 원내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혔는데, 이 대표가 버티고 있는 것에 대해 의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다”면서 “더욱이 전날 의원총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 대표가 기자들에게 의원총회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화가 많이 난 분듣도 상당 수 있다”고 했다. 전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통해 ‘모든 국회의원의 당직 사퇴와 윤석열 후보 중심의 전권 행사를 통해 당과 선대위를 재정비하자’고 의결했다. 회의에서는 이 대표 등 당 지도부에 대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상당 수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의원들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변화와 단결' 의원총회에서 김기현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전날 의원총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민의힘 대표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원총회가 당대표에 대한 사퇴 압박으로 보이지 않냐’는 질문에 바른미래당(현 국민의힘) 사태 당시 손학규 대표의 ‘버티기 작전’을 거론하며 “이 분들이 손학규에 단련된 이준석을 모르는구나”라고 했다.

그는 ‘사퇴를 요구한다면 사퇴할 의사가 있다’고 한 김재원 최고위원과 사퇴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수진 최고위원을 향해 “만약 대의를 위해 희생을 선택하시면 즉각적으로 대체 멤버를 준비하겠다”고도 했다. 김 원내대표와 김도읍 정책위의장의 사퇴로 선출직 최고위원 3명이 더 사퇴하면 최고위원회의 의결정족수가 미달돼 ‘이준석 지도부’가 무력화 될 수 있다는 관측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누구를 임명하겠냐’는 질문에 웃으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임명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날 각각 열린 재선 의원 모임과 중진 의원 모임에서는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강하게 불거졌다. 이날 당내 최다선(5선)인 정진석 의원이 국회부의장실에서 소집한 중진 의원 모임은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문 밖으로 “당대표가 후보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할 입장이냐”, “당을 이 꼴로 만든 게 누군데, 후보냐. 이준석 아니냐 이준석”이라는 고성이 새어나왔다.

모임에 참석한 권성동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당대표의 제1임무는 정권교체의 선봉장이 되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발언을 보면 당의 분란을 조장하고 해당 행위를 한 것이기에 중진의원들이 그 부분에 대해 이 대표를 만나 짚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나서 (이 대표가) 돌아오면 환영하겠다”고 했다. 정 의원도 “이 대표의 최근 궤적은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중진들이 공감대를 형성했다”면서 “매우 비상식적”이라고 했다. 그는 “이 대표와 직접 만나 대화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도 했다.

비슷한 시각 열린 재선 의원 모임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오갔다. 김정재 의원은 이날 오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내일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기로 했다”면서 “분열하고 갈등한 점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드리고, 정권교체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해당 행위를 하는 발언 등에 대해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제해 줄 것을 건의했다”고 했다. 그는 ‘이 대표에 대한 사퇴 목소리도 나왔냐’는 질문에 “전날 의원총회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을 알고 계시지 않냐”고 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지난해 6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 앞서 국민의힘 권성동, 정진석 의원 및 내빈들과 함께 지지자들 앞에 서고 있다. /연합뉴스.

선대위 관계자들도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날(3일) 선대위 해체로 공동선대위원장직을 내려 놓은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제기한 이 대표의 성상납 의혹을 거론하면서 “현재 단계에서는 의혹일 뿐이지만 성상납 의혹을 받는 대표가 선거기간 당을 책임진다는 것은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 쉬운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선거 기간만이라도 이 대표가 스스로 직무 정지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름다운 정치가 아닐까”라고 적었다.

김경진 선대위 상임공보특보단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한 80% 정도는 이준석 대표가 물러나서 백의종군 하시는 게 좋겠다는 게 여론”이라고 했고, 김용남 전 의원은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후보 입장에서 이 대표는 계륵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다만 이 대표가 윤 후보의 대선 캠페인에서 완전히 배제될 경우 2030 표심 이탈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홍준표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과거엔 지역투표였지만 이젠 세대 투표 양상이다. 캐스팅 보트 층인 2030의 상징성이 이 대표에게 있는데, 이 대표를 선대위에서 들어내면 대선은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선대위에서도 이를 의식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태희 총괄상황본부장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이 대표에게 필요한 역할을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역을 다니며 후보를 돕고, 지역을 다니면서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20대 30대가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로 이 대표가 우리 당이 가진 것들을 갖고 그들과 계속 소통해 떨어진 2030 민심을 회복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 김 위원장의 판단인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말의 주체가 누군지도 불분명하지 않냐”면서 “그런 것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답하지 않겠다. 공식적으로 결론이 나온 것을 갖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는 분들에게 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대위 개선 방향’을 묻는 말에는 “저는 아무런 의견이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와 이준석 대표가 지난해 12월 4일 오후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에서 커플 후드티를 입고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한편, 윤석열 대선 후보는 5일쯤 기자회견을 열어 향후 선대위 운영 방안을 발표할 전망이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배제설이 돌면서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 대표와의 관계 설정도 주목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일로 예정된 국민의힘 초선 의원 간담회에서도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며 거취 표명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