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군기반장'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야 하는 비서로 머물지 않고 여권 내 현안에 직접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다. 강 실장은 비공개 회의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런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강훈식, 고위 당정청에서 특검 추천 문제 제기… 정청래, 공개 사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특검 추천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께 누를 끼쳤다"며 사과했는데, 이 사과가 나오는 과정에서 강훈식 비서실장의 역할이 컸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하루 전인 8일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비공개 회의 때 강 실장이 정 대표에게 특검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한 참석자는 "회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뜻을 강 실장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무게가 실렸다"면서 "다음날 정 대표가 공개 사과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강 실장은 '공소청 보완수사권 부여'와 관련해서도 정 대표에게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예외적으로 보완수사권이 필요할 수 있다. 10월까지 서두르지 말고 의논하자"고 했는데, 민주당은 보완수사권은 주지 않겠다고 당론을 정해버렸다. 한 참석자는 "강 실장이 '청와대는 여러 현안에서 양보를 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로 지적했다"고 전했다.
◇"자기 기득권 지키는 정치인들"에 경고장도
강 실장은 당내 여러 인사들의 '자기 정치'에도 경고장을 날렸다. 강 실장은 9일 공개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행정 통합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의 기득권 사수를 위해 통합에 반대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통합이 좌절된다면 그들은 오랫동안 비판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강 실장은 대전·충남 통합단체장 출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생각해본 적 없다'는 짧은 답만 내놨는데, 이날 인터뷰에선 '기득권 사수를 위해 통합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콕 집어서 저격한 것이다. 행정 통합을 위한 법안들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올라갔지만 처리가 지지부진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 실장은 이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과 중앙 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덜어내겠다고 각 부처를 설득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발로 뛰는데 당이 돕기는 커녕 발목을 잡는 상황에 대해 청와대가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연일 국회의 느린 일처리와 입법 속도를 질타하고 있는데, 야당을 겨냥한 것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여당 지도부를 향한 비판"이라며 "집권 2년차를 맞아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당청 관계에도 일부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청와대의 생각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은 국회 입법 속도를 높이라는 대통령 지시가 여당 지도부를 향한 것이냐는 질문에 "국정과제들이 산적해 있고, 또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거기에 보조해서 입법도 속도를 맞춰달라는 총론적인 주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