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3차 상법 개정에 다시 드라이브를 건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강화, 기업 공시 제도 개편 등 기업 지배구조를 겨냥한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경제계는 배임죄 폐지는 지지부진한데 기업을 겨냥한 규제 강화 움직임만 계속되자 피로감을 호소한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9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민주당은 코리아 프리미엄을 위해 3차 상법 개정안을 비롯해 자본시장의 근본 체제를 개선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당초 지난주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3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국회 일정과 이해찬 전 총리 별세 등이 겹치면서 처리가 미뤄졌다. 2월 중에는 반드시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자사주 소각 다음은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민주당이 추진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은 신규 취득 자사주의 1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하고, 자사주 처분 계획은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이를 통해 기업들이 자사주를 활용해 대주주의 기업 지배권을 높이는 것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경제계는 적대적 M&A(인수·합병) 위협 때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던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경제8단체는 지난 20일 정부와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합병 등의 과정에서 비자발적으로 취득한 자사주는 소각 의무를 면제하고, 승인 기간과 소각 유예 기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국내 상장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만 72조원대에 이르는 만큼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시행되면 기업 경영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를 통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민주당은 국민연금에서 자금을 받아서 굴리는 민간 위탁 운용사 선정 기준에 '스튜어드십 코드' 준수 여부를 포함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에 착수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 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뜻하는 제도로 국내에는 2016년 말에 도입됐다. 하지만 자율 규범 형태인 탓에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민주당은 국민연금의 돈을 받아서 투자하는 운용사가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섰는지를 따지는 식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강제성 준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 자금을 위탁 받으려면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것이다. 국민연금과 기관 투자자가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강화를 요구하면 국내 자본시장도 해외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전체 기금 1473조원 가운데 절반 정도인 719조9000억원을 민간 운용사에 위탁하고 있다.
민주당 코스피5000특위 핵심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미 있는 개념인데 얼마나 현장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느냐가 핵심"이라며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평가를 반영해 위탁운용사 선정 시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은 3월쯤 국회에 발의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30일에도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주주관여 활동과 주주제안 활성화 방안을 모색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는 주주제안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대상 범위도 주주총회 승인 사항으로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움직임을 놓고 야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헌법적 쟁점' 토론회에서 "국민연금이 (기업) 의사결정에 점점 더 깊숙이 관여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위험한 발상"이라며 "국민연금을 장악하는 정부가 마음먹고 사기업에 의결권을 좌지우지한다면 자유시장 경제 질서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최환열 한국금융시장 연구원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민간기업의 국유화를 금지한 헌법 제126조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공시 제도도 손보자…"기업 부담 커" 목소리도
민주당은 기업 공시 제도 개편도 검토 중이다. 배당을 할 때 자기자본이익률(ROE) 같은 핵심 자본 지표를 주주들에게 상세히 알리고, 유상증자나 사채를 발행할 때는 다른 조달 수단이 없었는지도 제대로 따지라는 취지다. 민주당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기업공시 개정 방안' 간담회를 개최하고, 상법 개정에 발맞춰 기업 공시 제도를 어떻게 개편할 지 논의했다. 이강일 민주당 의원은 "해외 투자기업들이 우리 기업 공시 제도의 불투명성을 크게 성토하고 있다"며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용우 전 민주당 의원(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은 "공시 제도 개편 없이는 상법 개정이 안착할 수 없다"고 했다. 예컨대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않는 이유나 일반주주의 사외이사 후보 추천 같은 주주제안권 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회사의 투자자본이익률(ROIC)이나 ROE와 자본비용(COE)를 비교해 배당, 자사주 매입 등을 공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의원은 "최근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에 사외이사 1명이 반대했는데, 반대한 이유가 공시돼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여당의 움직임에 기업 경영 부담이 크다는 반론도 있다. 기업 공시 제도 간담회에서도 김춘 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기업 입장에선 (이런 제도 개편이) 공시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상법 개정 이후 굉장히 많은 혼란이 있다. 이를 감안해 공시 제도 개정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경제계에선 이재명 정부가 상법 개정 대신 약속한 배임죄 폐지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한 대기업 사장은 "배임죄 개선이 늦어지면 기업은 경영 활동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책임 범위가 커지는 만큼 배임죄를 빨리 폐지해서 기업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했다.
야당에선 3차 상법 개정에 맞불을 놓는 '적대적 M&A 방지 3법'도 발의됐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집중투표 청구요건 강화, 타회사 주식 취득 보고기준 강화, 차등의결권·신주인수선택권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냈다. 신 의원은 "1차·2차 상법 개정으로 기업들은 이미 경영권 방어 무기가 약해졌는데, 마지막 방패(자사주)마저 강제로 빼앗아버리면 중국 등 거대 해외 투기자본에 무방비 노출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