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당원 게시판 사건'를 놓고 극심한 내홍 속에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작년 연말에도 한 전 대표 사퇴를 둘러싼 극심한 내홍을 겪은 바 있다.
국민의힘 당무(黨務)감사위원회는 지난 30일 한 전 대표의 가족이 연루된 '당원 게시판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당무감사위원회는 장동혁 대표가 지난 9월 임명한 이호선 위원장이 이끌고 있다.
당원 게시판 사건은 작년 7~11월 국민의힘 온라인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에 한 전 대표의 가족과 이름이 같은 당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친윤계 의원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의혹이다. 당무감사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문제가 된 계정들이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동일하다며 사실상 의혹이 사실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는 입장도 냈다.
한 전 대표와 친한계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 전 대표는 직접 SBS 라디오에 출연해 "당무감사위의 발표를 봐도 게시물이 명예훼손이나 모욕 같은 내용은 아니고, 주요 일간지 사설과 칼럼을 익명으로 올린 것"이라며 "당시에도 장 대표가 여러 방송에 나가서 (당원 게시판 논란은) 한동훈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고, 익명 게시판 글로 문제될 게 없다고 아주 강력하게 설명했었다"고 했다.
친한계 의원인 배현진 의원도 "당무감사위원장이란 중요 보직자가 눈치도 없이 당의 중차대한 투쟁의 순간마다 끼어들어 자기 정치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며 "당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비판했고, 박정훈 의원도 "대치 정국에 대여(對與)공세 재료가 넘치는 시점에 내부 총질이라니"라고 했다.
정성국 의원도 "불과 1년 전에는 '문제 되지 않는 게시글'이라고 말했던 장동혁 당시 수석최고위원과 지금의 장동혁 당 대표는 다른 사람인가"라며 당무감사위와 장 대표를 함께 비판했다.
반면 한 전 대표의 사과를 촉구하는 입장들도 있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해 "가장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서 만약 당원게시판 사건처럼 책임이 없는 행동을 했다고 하면 이것만으로도 같이 가기 쉽지 않다"고 했다.
갑자기 발표된 당원 게시판 사건 조사 결과 발표로 국민의힘 당내 유화 분위기도 삽시간에 사라졌다. 앞서 지난 24일 한 전 대표는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에게 "노고 많으셨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를 두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한 연합 가능성을 점치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이런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국민의힘은 2024년 말에도 한 전 대표 문제로 분란을 겪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이후 친윤계 주도로 한 전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가 잇따랐고 이 과정에서 심각한 내부 갈등을 노출했다. 그 후 1년이 지나도록 한 전 대표를 둘러싼 당내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소속 한 초선 의원은 "중도 확장이 중요한 시국에 내부 갈등을 수습하기는 커녕 오히려 키우고만 있으니 장동혁 체제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며 "요지부동인 당 지지율을 반등시킬 쇄신안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가 이혜훈, 김성식 같은 보수 인사를 기용하면서 중도로 확장하는 것에 대한 불안도 크다. 이재명 정부가 인사를 통해 중도 보수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반면, 장동혁 체제의 국민의힘은 계파 싸움에만 몰두하면서 영남 지역 정당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 30일 'KBS1라디오 전격시사' 인터뷰에서 "국민에게 혁신을 통해서 국민의힘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국민을 감동시킬 때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며 "혁신이 우선"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장 대표는 연초에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방문할 예정이다. 쇄신안에 대한 고언을 듣겠다는 계획이지만, 중도 확장이 시급한 때에 전직 대통령의 조언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쓴소리도 당내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