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체의 경제 정책을 조율하는 대통령실 성장경제비서관(옛 경제금융비서관) 인선이 해를 넘기게 됐다. 경제성장수석실의 선임 비서관 자리로 과거 정부에서는 늘 1순위로 인선이 이뤄졌는데 이재명 정부에서는 정권이 출범한 지 반년이 지나도록 공석이다.
29일 정치권과 관가에 따르면, 성장경제비서관 인선은 최근 답보 상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종 후보에 오른 대학 교수가 면접을 봤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결국 최종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며 "그 이후로는 인선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쏙 들어간 상태"라고 했다.
성장경제비서관은 하준경 경제성장수석을 뒷받침해서 여러 경제 부처의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다.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의 나침반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실 경제성장수석실에는 성장경제·산업정책·국토교통·농림축산·중소벤처·해양수산 등 6개 비서관 자리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성장경제비서관은 선임이 맡는 자리다.
이재명 정부가 인수위 없이 출범했기 때문에 초반만 해도 성장경제비서관 인선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다른 비서관 자리가 모두 채워지는 와중에도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성장경제비서관이 공석으로 남으면서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주류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불신을 그 이유로 꼽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성장경제비서관은 과거 경제금융비서관 시절부터 기획재정부 출신이 도맡아 왔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초반에는 성장경제비서관에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들이 여럿 하마평에 올랐다. 하지만 유력하게 거론된 기재부 인사들이 모두 하마평에서 그치거나 면접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부처 고위 관료 출신의 한 인사는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기재부 출신을 선임해야 한다고 강훈식 비서실장에게 읍소했다는 이야기도 관가에 돌았다"며 "당연히 기재부가 가져가야 할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대통령실과 민주당에선 기재부만 빼고 적임자를 찾는 분위기"라고 했다.
기재부에 대한 집권 여당의 불만과 불신은 뿌리가 깊다. 옛 재무부 출신 엘리트 경제관료 집단을 뜻하는 모피아에 대한 운동권 출신 민주당 인사들의 불신에다 최근에는 몇 년간 이어진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국회를 농락했다는 불만까지 더해졌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윤석열 정부 때였던 2023년과 2024년에 2년간 86조원에 달하는 세수결손을 냈다.
한 민주당 의원은 "기재부 공무원 만큼 믿을 수 없는 사람도 없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기재부가 조직적으로 국회를 두 차례에 걸쳐 기망한 것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기재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한 것도 기재부의 힘을 빼기 위한 일환이었다. 이런 와중에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기재부 출신을 앉힐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경제 정책의 키를 하준경 수석이 아닌 김용범 정책실장이 쥐고 있고, 한미 통상 협상 같은 굵직한 경제 현안도 기재부가 아닌 산업통상부가 이끌면서 성장경제비서관이 굳이 필요하냐는 말까지 나온다"며 "이재명 정부 내내 기재부 출신이 갈 자리가 많이 없어질 것 같은 분위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