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하는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발언대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본회의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중단시키면서 논란 속에 막을 내렸다. 국회의장실은 "국회법에 따라 조치한 것"이라고 하는 반면 정치권에서는 "국회의 선례를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장의 필리버스터 강제 중단… 61년 만에 처음

당시 본회의에서 나경원 의원은 "사법파괴 5대 악법, 입틀막 3대 악법을 철회해달라. 대장동 항소 포기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우원식 의장은 "의제 안에서 발언해달라"며 나 의원의 발언을 끊더니 결국 마이크를 꺼버렸다.

이후에도 나 의원의 발언이 시작되면 다시 마이크가 꺼지는 일이 반복됐다.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국민 여러분, 정당한 무제한 토론을 국회의장이 마이크를 꺼서 방해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나 의원 옆에 서기도 했다.

국회의장이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킨 건 1964년 4월 20일 당시 이효상 의장이 김대중 의원의 마이크를 끈 이후 처음이다. 61년 만에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의장실 "의제와 상관 없는 발언 막은 것"…"9년 전 민주당은 그렇게 안했다"

이에 대해 국회의장실은 "우원식 의장이 국회법 102조에 따라 조치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제와 관계 없거나 발언의 성질과 다른 발언을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을 근거로 우 의장이 나 의원의 발언을 막으려고 마이크를 껐으니 법적으로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우원식 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킨 것은 우리 국회의 선례를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2016년 민주당 출신 이석현 국회 부의장은 국회법 102조를 달리 적용한 바 있다. 당시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를 진행하자 조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이석현 부의장은 "국회법 102조에는 의제 외 발언을 할 수 없다는 그런 규정이 있지만, 어떤 것이 의제 내이고 어떤 것이 의제 외인지를 구체적으로 식별하는 규칙이나 법 조항은 없다"고 했다. 이에 조은희 의원이 '편파적 운영'이라고 했지만 이석현 부의장은 김경협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용인했다.

이번에 나경원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하는 데 있어서 의제와 관련되지 않은 헌법을 읽어도 의장이 제지하거나 경고한 적이 없다"며 "우원식 의장은 아예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때는 최민희 의원이 헌법 전문을 읊기도 했고, 강기정 전 의원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도 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실의 한 보좌관도 "의장이 의제와 상관없는 말을 하지 말라며 필리버스터 도중 마이크를 끄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라며 "대놓고 말은 못해도 의장실 주장에 공감하는 의원이나 보좌관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우원식 의장이 정치적 노림수를 가지고 필러버스터 강제 중단을 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우 의장이 내년 상반기 국회의장 임기를 마친 뒤 국무총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정계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이를 위해 여권 강성 지지층에 눈도장을 찍으려고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중단시키는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우 의장은 친여 성향 유튜브 방송인 '김어준의 뉴스공장 겸손은 힘들다'에 출연했다. 또 12·3 계엄 사태 1년을 맞아 국회에서 열린 12·3 다크투어에서 직접 해설사로 나서기도 했다. 한 정치인은 "과거 국회의장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라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그날 12.3 다크투어'에서 독립기억광장을 설명하고 있다./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