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시작된 가운데, K1E1 전차의 성능 개량 사업 예산이 되살아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예산은 기획재정부의 첨단 전력 우선 기조에 따라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는데, 국회 국방위원회가 전력 공백 우려를 이유로 성능 개량 사업 예산을 다시 의결하면서 부활할 가능성이 생겼다. K1E1 전차는 절반 이상이 조준경 등 문제로 정상 운용되지 않고 있다. 군 안팎에선 성능 개량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추후 K1 전차 수출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

18일 군 당국과 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국방위는 지난 12일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예결소위)에서 K1E1 전차 예산을 의결했다. 군 당국은 K1E1 전차의 창정비와 함께 일부 성능을 향상시켜 K1E2 전차로 개량하는 것을 예정했지만, 기획재정부가 확정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제외된 바 있다. 이 성능 개량 사업은 총 약 1조2000억원을 들여 내년부터 2030년대 후반까지 K1E1 전차 1020여대의 포수 조준경과 냉방 장치, 양압 장치 등을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K1E1 전차의 현재 포수조준경으로 표적을 조준했을 때 화면이다. 왼쪽은 조준경이 정상 작동될 때 모습이고, 오른쪽은 성능이 저하된 상태다. /유용원 의원실 제공
현재 군이 운용하고 있는 K1E1 전차에서 포수가 야간에 정상 작동되는 조준경으로 표적을 조준했을 때 화면이다. / 독자 제공

군 당국에서는 K1E1의 조준경이 노후해 성능 개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조준경은 K1 전차가 한창 전력화되던 1990년대에 도입된 부체계다. 조준경을 구성하는 열상 감지기나 냉각기, 레이저 송신 장치 등 부품에 이상이 생겼음에도 이미 단종돼 교체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군이 운용하는 K1 전차 중 1020여대에선 포수가 보는 영상의 화질이 좋지 않거나 주변을 탐지·인지하는 성능이 부정확한 문제가 발생했다. 주간에도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다. K1 전차는 군이 보유한 전차 중 58%에 달하는 핵심 전력이다.

냉방 장치가 없는 점도 문제다. 전차 특성상 30도 이상 날씨에서 1시간 운용하면 내부 온도는 50도가 넘어간다. 사람 체온이 40도 이상이면 열사병 등의 우려가 생긴다. 이 때문에 군은 전차의 해치를 열고 파라솔을 포탑에 올려놓은 채 훈련했다.

냉방 장치가 탑재된 K1 전차는 200여대에 불과하다. 군 관계자는 "K1 전차는 K2 전차보다 더 많은 군의 핵심 전력"이라며 "정상 운용되지 않으면 전력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미 이 상황을 인지했던 군은 지난 2017년 K1E1 전차의 성능 개량 소요를 결정했고, 2019년 사업 타당성 조사를 거쳐 신형 조준경 등이 탑재된 K1E2 전차의 체계 개발을 지난 3월 끝낸 바 있다. 지난해 마무리된 시험 평가에서도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기도 했다.

군은 기존 K1E1 전차를 완전 분해한 뒤 부품을 교체하고 성능 개량 장비를 장착해 K1E2 전차로 바꾼다는 계획이었다. 내년 초부터 이 사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K1전차가 한미공병부대가 구축한 연합부교를 이용해 남한강을 도하하고 있다. /뉴스1

K1 전차의 성능 개량 사업은 방산 수출과도 연결돼 있다. 중국이나 미국의 전차를 도입했던 동남아시아나 중남미의 다수 국가가 한국의 K1 전차 도입을 현재 검토하고 있다. 전차 시장에서 K2 전차는 고성능 프리미엄으로, K1E2 전차는 중저가 가성비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군 안팎에선 도입을 검토하는 국가가 고온다습한 환경인 곳이 많은 만큼, 수출 확대를 위해서라도 성능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K1 전차를 둘러싼 예산 미반영을 두고 여야는 한목소리로 질타하고 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K1E1 예산 미반영을 지적하며 "군인 정신으로 더위를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10월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K9 자주포에 냉방 장치가 없는 점을 지적하며 장병들의 전투력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국감에서 "(예산 통과를 위해) 국회가 힘써달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국방위 예결소위에서도 K1E1 예산 증액에 이견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위 국민의힘 간사인 강대식 의원은 "(여야 모두) 군 전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예산이 국방위 예결소위에서) 통과됐다"고 했다. 국방위 예결소위를 통과한 예산은 5억원으로, K1E1 성능개량 사업의 착수금격이다.

K1E1 성능 개량 예산은 예산결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될 지가 결정된다. 익명을 요구한 예결위 소속 한 의원은 "상임위를 거쳐 올라온 예산 중 정부 부처 장관과 여야 의원들의 의견이 합치된 사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