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의혹제기만 하고 답변을 하지 못해서 답답한 게 많다. 말씀을 잠깐 드리겠다. 일개 비서관이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합의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안타깝다. 제 입장에선 50명 비서관 중 한 명인데 너무 공격 받고 있고, 국감과 관련되지 않은 걸로 과도하게 공격받는 것이 억울하다."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비서실을 대상으로 연 국정감사에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기관 증인으로 출석했다. 강 실장은 협치의 상징인 붉은색과 파란색이 섞인 넥타이를 맸다.

하지만 이날 국감은 협치보다는 여야 간 고성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가까웠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김건희 전 여사를 비롯한 전 정권 관련 문제들을 거론하며 맞섰다. 이 과정에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이기헌 민주당 의원이 배치기를 하는 볼썽사나운 장면도 연출했다.

김현지 논란 속에 파행으로 진행된 대통령비서실 국감에서 유일한 승자는 강훈식 실장이라는 평가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1973년생으로 여권의 '포스트 86' 세대 대표주자로 꼽히는 강 실장은 아산시을을 지역구로 둔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대통령실 초대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의원직은 내려놨다. 한 여권 인사는 "강 실장은 당파성이 옅고 전략통의 이미지가 강하다"며 "민주당이 중도로 확장하기 위해서 키워야 할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강 실장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전면에 나서는 일이 많지 않았다. 주로 후방에서 여야간, 당정간 이견을 조율하고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강 실장이 전면에 나서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재판 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달 초 재판 중지법을 '국정 안정법'이라며 처리 방침을 밝히자마자 대통령실에서 나서서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하루 만에 재판 중지법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 이런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달한 게 강 실장이었다.

이날 국감에서도 강 실장은 전면에 나서서 야당의 공격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정 인물이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질의에는 "전혀 동의하기 어렵다"며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인사위원장으로서, 모든 것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김 부속실장 관련 의혹을 제기하자 강 실장은 '일개 비서관'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박 의원이 제기한 9가지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강 실장은 "저희가 이 자리에 증인으로 와 있지, 피의자로 와 있는 상태는 아니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을 지낸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 때는 고성을 주고 받기도 했다.

강 실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꼽힌다.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오세훈 시장에게 밀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어지면서 여권에서도 새로운 얼굴을 찾는 분위기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와 뉴스토마토가 지난달 13~14일 서울시 성인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시장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오 시장과 강 실장은 각각 42.3%, 40.6%를 얻어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인 1.7%p에 불과했다. 여권의 또다른 유력 서울시장 후보였던 김민석 국무총리가 최근 민주당 당권 도전으로 마음이 기울면서 강 실장을 더욱 주목하는 분위기다.

강 실장의 약점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점인데, 이번 국감에서 강 실장이 제대로 얼굴을 알렸다는 평가도 있다. 민주당 서울시당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민들이 강 실장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게 내부 평가였는데, 최근 들어 강 실장이 해외 방산 특사, 국감 등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행보에 적극 나서면서 이런 약점이 채워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시장 선거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경제 문제에 민감한 중도층을 잡아야 하는데 강 실장이 당내에서 매력적인 후보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