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북한 외교에서 중책을 맡았던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사망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었다.
조선중앙통신은 4일 "우리 당과 국가의 강화발전사에 특출한 공적을 남긴 노세대 혁명가인 김영남 동지가 97살을 일기로 고귀한 생을 마쳤다"고 전했다. 통신은 사인을 암성중독에 의한 다장기 부전으로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일 오전 1시 주요 간부들과 함께 김영남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을 찾아 조문했다. 조문은 4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발인은 5일 오전 9시라고 통신은 전했다.
김영남의 장례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 결정에 따라 국장으로 진행된다. 국가장의위원회에는 김정은을 비롯해 최룡해, 박태성 등 당·정 고위 인사들이 포함됐다. 과거 대남 업무를 맡았던 김영철, 리선권의 이름은 명단에서 빠졌다. 이들은 2024년 김기남 전 비서 사망 당시에는 장의위원에 포함된 바 있어 이번 제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통신은 김영남이 1928년 일제강점기 '항일애국자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전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재직 중 모스크바로 유학한 뒤 1952년 귀국해 중앙당학교 교수, 이어 당 국제부 간부로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이후 20대 젊은 나이에 외무성 주요 보직을 두루 맡으며 북한 외교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체제 변천 속에서도 좌천이나 혁명화 조치 없이 핵심 요직을 지킨 보기 드문 인물로 평가된다.
1983년부터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현 외무상)을 맡았으며, 1998년 김정일 정권 출범 이후에는 21년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재임하며 대외적인 국가수반 역할을 했다. 대외활동을 기피했던 김정일을 대신해 각국 정상들과 회담을 주도하며 국제무대에서 북한을 대표했다.
김정은 체제에서도 그는 각국 사절단을 맞이하며 정상외교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고위급 대표단 단장으로 방남해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부부장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김영남은 2019년 91세의 나이로 공식 직책에서 물러나며 60여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