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 스타트업 혁신을 지원하는 유니콘팜 국회 모임을 이끈 강 실장은 평소 필립 아기옹의 책을 자주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조선비즈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새로운 기술이 지속적인 성장을 어떻게 이끌 수 있는지 보여준 혁신성장 연구자 3명에게 돌아갔다. 이 가운데 지속적 성장의 매커니즘을 밝혀낸 필립 아기옹(69·프랑스)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와 피터 하윗(79·캐나다) 미 브라운대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참모들과도 관련이 깊다.

필립 아기옹 교수는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수시로 언급한 바 있는 인물이다. 강 실장은 국회의원 시절인 2023년 10월 페이스북에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자본주의는 미국 시스템만큼 혁신적이고, 덴마크 시스템만큼 보호적이며 포용적인 사회이다.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렸다.

강 실장은 "필립 아기옹의 책 '창조적 파괴의 힘'의 한 대목"이라며 "미국만큼 혁신적이고, 유럽만큼 보호적인 나라. 혁신과 도전이 넘실대고, 사회적 약자 역시 공동체 안에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나라. 너무 이상적으로 들리는 듯도 합니다만, 혁신과 보호를 공존 불가능한 가치라고 여기며 하나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에도 강 실장이 대표를 맡고 있던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인 유니콘팜의 토론회에서 "'미국만큼 혁신적이고, 유럽만큼 보호적인 자본주의 경제'는 이상적으로 들릴지언정, 한국의 대내외적 경제 상황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모색해야 하는 길"이라며 "혁신적인 스타트업들과 함께 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기옹 교수는 1992년에 쓴 논문에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한 바 있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이지만, 동시에 기존 기술을 밀어낸다는 점에서 파괴적이라는 의미다. 창조적 파괴가 불러오는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혁신이 제대로 유지되기 힘들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강 실장은 미국의 혁신과 유럽의 보호를 결합한 한국만의 창조적 파괴의 길을 아비옹 교수를 통해 본 셈이다. 강 실장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아기옹 교수는 강 실장의 스승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대통령실 경제성장수석./조선비즈

대통령실 경제성장수석을 맡고 있는 하준경 수석은 아기옹 교수와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피터 하윗 교수의 제자다. 하 수석은 미국 브라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때 박사과정 지도교수가 하윗 교수였다.

하 수석과 하윗 교수는 2007년 장기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총요소생산성(TFP) 성장률 간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함께 쓰기도 했다. 이 논문은 슘테퍼식 성장 이론을 검증하며 지속적인 TFP 성장을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비율을 R&D에 투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는 GDP의 5%를 R&D 투자하는 것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하 수석과 하윗 교수의 논문이 이 같은 내용을 뒷받침한다.

아기옹 교수와 하윗 교수는 혁신이 기업들의 R&D 경쟁의 결과물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다만 '역U자형 혁신' 모델을 제시해 경쟁이 너무 약하면 혁신의 유인이 부족하고, 경쟁이 너무 강하면 반대로 수익성 저하로 R&D가 위축된다고 지적했다. 적정 수준의 경쟁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가 보조금이나 경쟁정책, 특허제도 등을 통해 이를 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