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10일 국회를 다시 찾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사퇴한 지 115일 만이다. 그는 "대권에 도전하는 모든 분들과 연대하고 화합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국회 본관 앞 분수대 주변에는 출마 선언이 예고된 2시가 임박하자 한 전 대표 지지자들이 몰려 들었다. 한 전 대표는 지지자 200여명의 환호성을 받으며 마련된 연단에 올라섰다.
한 전 대표는 "대한민국이 성장하고 미래를 지향하고 실용적인 나라, 중산층의 나라로 만들고 싶다. 대한민국 건국일에 그 일들이 실제로 이뤄진 곳이다. 민주주의의 출발은 국회가 시작이고 끝"이라며 출마선언 장소로 국회를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전 대표는 "1992년 봄, 저는 대학 1학년생이었다. 벚꽃 필 무렵이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라며 준비해온 출마 선언문을 읽어 나갔다.
그의 입에선 '서태지'가 나왔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말로 길보드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었다.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기성 평론가들로부터 '저게 음악이냐'는 최악의 혹평을 받았다. 다른 한편에선 원래 록밴드에서 베이스를 치던 록커가 랩과 댄스를 하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시대를 바꾸는 문화 대통령이 됐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대교체는 어느 한순간 폭발하듯이 일어난다"라며 "다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부름 앞에 섰다. 우리 손으로 미래를 결정할 선택의 순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 나물에 그 밥처럼, 사람만 바꾸며 적대적 공생을 해온 구시대 정치를 끝장내겠다.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처럼 고정된 틀에서 택일을 강요하는, 기득권 정치의 막을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지지자들은 "한동훈"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한 전 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 26일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며 정치권에 입문했을 때도 X세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 가사를 토대로 수락 연설문 마지막 대목을 활용한 바 있다. 이날도 '서태지'를 언급한 것은 정치권에서도 '시대교체'를 이루겠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는 출마 선언 후 '연대하고 싶은 후보가 있나'라는 질의에 "지금은 위험한 정권이 들어서고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뭉칠 때다. 대권에 도전하는 모든 분들과 연대하고 화합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앞서 출마 선언문에서 "광복 후 80년간 피땀 흘려 이룩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런 결정적 시기에 위험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괴물정권이 탄생해 나라를 망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소통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선 "딱히 연락을 받고 있지는 않다"며 "기회가 되면 연락드릴 생각"이라고 했다.
당내 일각에서 나오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차출론에 대해선 "제가 말씀드릴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한 대행이 위기 상황에서 정부를 대표해 잘 이끌어주고 계신다고 생각한다"고만 답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에 대해선 "지금 상황에선 미리 말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정해진다고 해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며 "그 생각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좋은 정치를 만들고 어떻게 하면 이기는 정치가 될지 생각하겠다"라고 했다. '대통령 집무실 세종시 이전'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날 선언식에는 6선의 조경태 의원과 3선의 송석준 의원, 재선의 서범수·박정하·배현진·김예지 의원, 초선의 정성국·박정훈·김상욱·우재준·고동진·안상훈·김소희·한지아·진종오 의원 등 10여명의 현역 의원과 김종혁 전 최고위원, 윤희석 전 대변인 등이 참여했다. 지지자들은 한 전 대표가 출마선언문을 낭독할 때마다 "맞습니다" "한동훈은 할 수 있다"라며 호응했다. 이들은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마친 한 대표가 차량을 타고 국회를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응원했다.
한 전 대표는 출마 선언에 앞서 국민의힘 지도부를 예방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보수의 자산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며 "품격 있는 비전 경쟁으로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그려주시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큰 뜻을 품은 만큼 본인의 뜻이 잘 이뤄지길 기원하고 당으로선 모든 후보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 깨끗하고 감동적인 경선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