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제안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각종 여론조사상 '캐스팅 보트'인 중도층이 표류하는 상황에서다. 핵심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공직자를 직접 파면하는 것이다. 당에선 대선 공약을 지키는 차원이란 입장이지만,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 혐오를 이용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국민이 한다. 민주당이 주권자의 충직한 도구로 거듭나 꺼지지 않는 '빛의 혁명'을 완수할 것"이라며 "'민주적 공화국'의 문을 활짝 여는 첫 조치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12·3 비상계엄 이후 정국을 언급하며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까지 헌법기관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과 폭력이 난무한다. 헌법원리를 부정하는 반헌법, 헌정파괴 세력이 현실 전면에 등장한 것"이라며 "민주당은 민주공화정의 가치를 존중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헌정수호연대'를 구성하고 헌정파괴세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국민소환제는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을 임기 중 국민 투표로 파면할 수 있는 제도다. 국민이 직접 정치인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힌다. 지방정부의 경우엔 주민소환제, 정당 대표에겐 당원소환제로 각각 적용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고, 국민의 정치 참여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주목 받는다.
그러나 법적 쟁점도 있다. 헌법상 선출된 권력은 양심에 기초해 국가 이익을 추구할 '권한'을 위임받는데, 국민소환제가 이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적 제거' 수단으로 남용될 거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정치적 분열이 극심한 현 상황에선, 자칫 여야 대결 구도를 극대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국민소환 관련 법안은 4건이다. 모두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나왔다. 전진숙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경우, 탄핵소추 등 헌법질서 수호 관련 중대 안건의 표결에 고의로 불참한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 7일 윤 대통령 1차 탄핵안 표결 당시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겨냥한 내용이다.
◇與 "불체포특권 약속 깨더니… 李 먼저 소환 투표"
이 대표는 '정치개혁' 이슈 선점을 노리고 있다. 다만 국회 차원에서 입법에 속도가 붙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 대표가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약속을 어겨 논란이 됐고, 각종 범죄 혐의로 재판도 받고 있어서다. 김대식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본회의 직후 취재진에 "제안은 환영하지만, 실천이 중요하다"며 과거 특권 포기를 어긴 이 대표를 겨냥했다.
국민의힘 친한(親한동훈)계 모임인 '언더73(1973년생 이하 정치인)'은 국민소환제 첫 타자로 이 대표를 지정하자고 역제안했다. 이들은 "당장 2월 중에 여야 합의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고, 그 첫 번째 소환 대상자로 이재명 대표를 지정해 투표를 실시하자"며 "이미 한동훈 전 대표도 당 대표 후보 시절 권력형 무고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의 검사 탄핵 추진 당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검토하자고 말했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계엄 이후 정치 양극단화가 심해지고,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나 피로도가 높아졌다"면서 "대선 공약을 지키는 차원에서도 국민소환제를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세계적으로도 이 제도를 도입한 국가가 매우 적은 이유가 있다"며 "지금같은 정국에서 정치 혐오의 분출구가 될 위험성도 고려해봐야 한다. 이런 부분을 국회 차원에서 논의해보자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