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한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1차 시추 결과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야권을 중심으로 결국 국면전환용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미국 업체 용역비에 40억원을 썼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경제적 손실' 부분을 강조했다.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 /뉴스1

◇ 급박하게 결정된 尹대통령의 '이례적 브리핑'

동해안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이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해 6월 3일, 윤 대통령의 브리핑을 통해서였다. 브리핑은 이날 오전 급박하게 결정됐고, 브리핑장에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배석했다.

윤 대통령은 브리핑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매장 추정 지점을 가리키며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내용 발표 후 아프리카 정상회의 참석차 바로 이동했다. 안 장관은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매장 가치가 현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직접 설명한 이유에 대해 "이슈 파급력이 크고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해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장량이나 사업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매장 추정치를 발표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어하는 윤 대통령의 '급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당시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대 후반에 줄곧 머무르며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통해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었다"며 첫 사과를 했지만, 속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고 '조기 레임덕'이 가시화하는 시점이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에 나선 것도 정계에서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발표 전날 밤, 안 장관이 매장 가능성 사실을 보고하자 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윤 대통령이 발표가 있고 나서야 부랴부랴 2차관을 중심으로 언론에 설명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 여야, 공방…"계속 시추해야" "사기시추 사과하라"

결국 정부가 '사업성이 없다'는 결과를 내놓자, 더불어민주당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여당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재명 대표는 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인공지능(AI) 연구를 위해 GPU(그래픽처리장치) 최고급 사양 3000장 살 수 있는 돈을 '대왕 사기시추'를 한 번 하는 데 다 털어 넣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최근 정책 분야에서 포퓰리즘 이미지를 털고 합리·효율성을 강조하는 등 '우클릭 행보'에 주력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이에 윤석열 정부 및 여당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회·경제적 손해를 봤다는 점을 부각하는 모양새다.

그는 "(정부는) 이것(시추)을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씩 하려고 했다"며 "사실 그 돈을 아꼈으면, 이런 낭비를 안 했으면, 사기에 쓰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 대한민국 AI 연구자들(을 위해) 당장 1000억원 정도 들여 GPU 최고급 사양 3000장쯤 사주면 얼마나 연구에 도움이 되겠나"라고 했다.

같은 당 김민석 최고위원도 "대왕고래는 정부여당과 대통령이 나선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그 사기극 예산이 깎인 것을 계엄의 명분 중 하나로 내세웠다. 사기극을 명분으로 더 큰 사기극을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국민의힘 의원들은 바로 어제까지도 민주당을 비판하며 대왕고래에 대한 예산을 살리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국민께 대왕고래 사기극을 사과하라"고 했다.

반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실패라 단정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나머지 6개 유망 구조에 대한 탐사 시추도 해 보아야 하기 때문에, 동해 심해가스전 전체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다"라고 일축했다.

통상 첫 번째 탐사 시추에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가이아나는 14번, 동해가스전 역시 10년 넘는 기간 동안 11번의 탐사시추 끝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역시 '실패'라고 단정 짓기엔 이르다는 입장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한 번 시추를 해 봤는데 바로 나오면 산유국이 안 되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오전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동해안에 7개의 유망 광구가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 밝혀졌다"며 그중 한 개 시추했는데 경제성 있는 광구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시장의 기대감을 불필요하게 높이고 사안을 확대 해석케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여권의 한 관계자는 "발표되는 과정 자체가 정무적 해석이 반영될 여지가 많았다"며 "투자자들 실망이 결과적으로 현 시점에서 여당쪽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부메랑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실제 시장은 정치권 보다 더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5월 발표 이후 급등했던 한국가스공사 등 관련 테마주는 12·3 계엄 이후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하락세를 보였다가, 전날 사업성이 없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자 급락했다.

대왕고래 관련 테마주를 사들인 개인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정부 주도의 대국민 사기극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