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좀처럼 연금개혁 논의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모수개혁부터 우선 논의하자'는 데 공감하면서 연금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어디에서 논의할지를 놓고 여야가 물러서지 않으면서다. 여야가 한발씩 양보해 연금개혁 논의에 서둘러 착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국민연금 논의와 관련해 "모수개혁부터 논의할 수 있다"는 기조로 선회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7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 연금특위를 구성해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하되, 특위 차원에서 모수개혁부터 논의하는 부분까지도 제안했다"고 밝혔다. 전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모수 개혁이 좀 더 손쉽다면 그것부터 먼저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모수개혁이 연금 제도에서 내는 보험료율(내는 돈)·소득대체율(받는 돈)의 비율을 재조정하자는 것이다. 구조개혁은 국민연금은 물론 기초연금·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제도 전체를 연계해 연금제도의 틀 자체를 바꾸자는 내용이다. 여당은 그간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협의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연금 재정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 합의 가능성이 더 있는 모수개혁부터 논의하자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복지부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연금은 2055년에 고갈될 전망이다.
논의만 본격화한다면 모수개혁에서 여야가 합의안을 마련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1년 10개월 동안 논의를 거쳐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데 사실상 합의했다. 소득대체율도 42%(지난해 기준)에서 44% 사이로 의견이 좁혀진 상태다. 당시 민주당은 45%, 국민의힘은 43% 수준으로의 상향을 주장해 2%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민주당이 44%로 조정하자는 안도 제시했지만 막판에 정부·여당에서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연금법 처리가 불발됐었다.
김 의장은 취재진에 "(보험료율은) 여야 이견이 없는 상태다. 소득대체율은 민주당 안이 44%인데 적절한 수준에서 절충 협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특위를 구성하는 즉시 조속한 시기에 도출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쟁점은 연금개혁을 어디에서 논의할지다. 더불어민주당은 모수개혁을 놓고 여야 입장 차이가 크지 않으니, 속도감 있게 개혁하기 위해 상임위(보건복지위)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실 관계자는 "모수개혁은 21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논의가 충분히 돼왔고 어차피 특위를 가더라도 의결을 위해선 복지위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니 복지위에서 안 할 이유가 없다"며 "(여당이) 특위를 핑계로 시간만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여당은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모수개혁을 하더라도 기초연금 등 다른 연금과 상관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이를 위해 기획재정위, 환경노동위 등 소속 의원들, 관계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특위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모수개혁이지만 연금 자체에 대한 이해관계 당사자들,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복지위 소위에서만 이야기하는 건 무리가 있다. 기존 관례대로 특위에서 여야 동수 위원들이 활발하게 논의해서 결론을 도출하는 게 좋다. 또 연금법이 성안된 걸로 아는데 입법권이 있는 연금특위에서 조속한 결론을 내리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했다.
상임위는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 비율에 따라 구성된다. 반면 특위는 통상 여야 동수로 구성되고 위원장도 여당이 맡는다. 때문에 여야가 연금개혁 논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힘겨루기 중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여당은 특위 위원장도 민주당에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야가 물밑 협상에서 접점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특위를 구성해 논의하자는 쪽으로 야당에 중재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합의된 보험료율은 야당 주장대로 복지위에서 처리하고, 나머지 안은 특위에서 구성하자는 절충안도 나왔다. 복지위 여당 간사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소위에서 보험료율 13% 인상안을 우선 처리하고, 소득대체율을 포함한 나머지는 특위에서 논의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위 구성에 여야가 대립하면서 민생 의제를 논의하는 여·야·정 국정 협의회도 오는 10일 또는 11일 예정했으나 연기됐다. 내수경기 진작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논의도 발목 잡힌 모양새다. 여당은 국정 협의회에서 연금특위 구성 문제와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 근무 예외 적용' 조항 도입 등 쟁점 사안을 먼저 매듭지어야 추경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야가 '진정성'을 갖고 조속히 연금개혁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여야가) 의지만 있다면 방식은 모여서 합의하면 될 일이다. 형식을 핑계 삼아 (모수개혁) 합의를 못 한다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특위 구성조차) 안 된다는 게 한국 정치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