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 "대통령이나 지키지 왜 여기 와서 이러냐"

국민의힘 지도부가 설 귀성 인사차 서울역을 방문한 24일. 현장 시민들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일부 시민은 웃는 얼굴로 화답했지만, 눈길을 안 주는 이들도 많았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서부지법 폭동'을 언급하며 "정신좀 차리라"는 귀성객도 눈에 띄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정책 홍보물을 건네려 하자, 아예 등을 돌리는 이도 있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설 귀성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역의 한 남성 귀성객이 홍보 팸플릿을 주려는 권 위원장을 두고 등을 돌린 모습./뉴스1

권 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오전 10시쯤 서울역을 찾아 귀성 인사를 했다. 긴 연휴에 대비해 일찍이 귀성길에 오른 이들로 역내가 붐볐다. 지도부는 시민들을 향해 "즐거운 설 명절 보내시라"는 인사를 건넸다. 지도부가 서울역을 귀성 인사 장소로 고른 건 '경부선 라인'을 고려한 조치이기도 하다. 보수진영의 텃밭인 대구·부산을 잇는 노선이어서다.

몇몇 시민들은 지도부의 인사에 "명절 잘 보내시라"며 화답했다. 그러나 일부는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하라"며 악수를 거부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대통령이나 제대로 지키지 여긴 왜 왔느냐"고 했다. 한 상인은 "나라가 이렇게 힘든데 왜 남의 가게 앞에서 이러느냐"고 고성을 질렀다. 역 안에서 지도부를 기다리던 민주노총은 "내란의힘"이란 구호를 외쳤다.

현장이 소란해지자 시민들의 언성도 높아졌다. 의원들을 향한 고성이 계속되자, 다소 격앙된 김상훈 정책위의장이 "시끄러워!" "아주머니!"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당 지도부가 어깨에 두른 '경제를 힘차게, 국민을 힘나게' 문구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귀성 인사를 시작한 지 20분도 채 안 돼 여당 지도부는 서울역을 떠났다.

같은 날 민주당 지도부는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아 설 귀성길 인사를 했다.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김민석·한준호 최고위원, 이해식 대표 비서실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어깨에 '다시 뛰는 대한민국' '희망 가득한 새해'라고 적힌 어깨띠를 둘렀다. 20대와 40대 여성들이 이 대표에 사진 촬영을 요청했고, 이 대표도 웃으며 응했다. 또다른 시민은 "파이팅"이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민주당은 당초 용산역을 방문하려다 당일 오전 변경했다. 용산역은 역대 민주당 지도부가 귀성 인사 장소로 자주 찾던 곳이다. 주로 광주·목포로 가는 호남선이 통하는 곳이어서다. 당 관계자는 "호남선뿐인 용산역보다 영남·충청·강원 등 전국으로 향하는 노선이 있는 고속버스터미널로 장소를 바꿨다"고 했다.

다만 현장을 지나치던 60대 여성은 일행에게 "이재명도 믿을 수가 없다"며 "자기 재판은 늦추려고 하고, 대통령 탄핵 심판만 빨리 하라고 하느냐"고 했다. 이 대표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여든 야든 정치가 민폐"라고 하는 귀성객도 있었다. 이 대표는 이날 호남선과 경부선에 각각 30분, 13분씩 머물며 시민들을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4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민과 셀카 찍고 있다./연합뉴스

◇여론조사 믿었던 與… "쇄신 거부하면 역풍"

최근 국민의힘은 '반전 여론조사'에 다소 고무된 분위기였다. 윤석열 대통령·당 지지도가 비상계엄 이전으로 회복됐다는 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와서다. 그러나 실제 귀성길 현장에서 이런 변화를 체감하긴 어려웠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0~22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국민의힘 정당지지도는 38%로, 민주당(36%)보다 2%p 높았다. 여당 내부에선 '이재명 재판리스크' '탄핵소추사유에서 내란죄 철회 논란' 등이 호재로 작용했단 분석이 나왔다.

반면 이런 여론조사는 '민주당 견제'의 의미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재명 대표 독주체제와 민주당에 대한 견제일 뿐, 국민의힘 지지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로 보수진영의 위기의식이 커지면서, 여론조사에 '보수 과표집'이 반영됐다는 시각도 많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이 앞선 것은 적극적 지지가 아니라 민주당에 대한 경고이자, 보수 유권자가 과표집 된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다수의 조사 결과가 비슷하다면 신뢰성은 있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자만해져서 비상계엄을 미화하거나, 변화·쇄신을 도모하지 않으면 곧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기사에 인용한 NBS 여론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p)다. 응답률은 22.2%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