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년기자회견의 핵심은 '대선용 우클릭'이다. 당 강령에 '기본사회'를 명시한 지 5개월 만에 공약을 재검토하고, '성장'을 제1과제로 배치했다.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으로 명명한 민주당의 분배 위주 경제정책 기조를 완전히 뒤바꾸는 발언이다. 국토보유세를 주장하던 야당 정치인의 변심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진보진영에선 이 대표가 대권을 위해 당의 근간을 흔든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민간 주도 정부 지원' 시대로 전환과 ▲기업의 효율적 경영 방해하는 구조 혁신 필요하다며 ▲경제 성장이 시대적 과제라고 했다. 기본소득 기조에 대해서도 "지금은 나누는 문제보다 만들어가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며 "경제적 안정과 성장이 가장 시급한 상황이라, (기본소득 기조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공산당 지도자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도 인용했다. 이 대표는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면서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닌가.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고 했다.
진보진영의 '성역'이었던 조세정의 및 노동시간 이슈에 대해선 '선악(善惡)구도 탈피'를 거론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금투세 폐지를 선언한 데 이어, 가상자산 과세도 유예했다.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를 하지 않는 것으로,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민주당의 전통적 조세 기조와 상충한다.
최근엔 재계와 만나 반도체 등 분야에 '주52시간 근무 예외적용'(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검토해야 한다고도 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노동계는 물론,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이견이 큰 사안이다. 당내 반발도 여전하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선악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라며 "공개적 반발도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른바 '가치'와 '선악구도' 위에 세워진 진보정당 대표의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이다.
◇진보 정체성 넘어 '중도표' 올인… 내부선 "자기부정"
이 대표의 이런 '변심' 배경엔 차기 대권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0.7%포인트(p)로 차이로 패배한 이 대표로서는 캐스팅 보트인 중도층 표심이 절실하다.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중도 견인'을 축으로 경제 이슈를 공략해온 이유다. 지난해 전당대회를 전후해 금투세는 물론, 종합부동산세·상속세 완화도 거론됐다. 이 과정에서 당 정책 수장인 정책위의장과도 충돌했다. 전통 민주당이 '부자 감세'로 보고 반대해왔던 것들이다.
대선용 기조 전환이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회견에서 "효율적 경영을 방해하는 비정상적 지배 경영구조를 혁신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재계가 '경영권 침해'를 우려하는 상법 개정은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메시지와 정책 방향이 충돌한다'는 지적에 대해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자는 것"이라며 "기업의 범죄행위를 지원하면 나라를 망친다. 서로 전혀 상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치권에선 재판 리스크에 대한 이 대표의 조급함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근 정치평론가는 "정당은 단계별로 정책적 지향점을 뚜렷이 제시하면서 수정해 나가야 하는데, 충분한 논의없이 당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라며 "쥐가 아니라 본인 지지율을 잡겠다는 것으로 비친다"고 했다. 또 "정책방향 수립 과정을 통해 시장에 신뢰를 줘야지, 그때그때 바꾸면 당에 대한 믿음도 무너진다"고 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정당의 목적은 정권 창출이기 때문에 이념과 진영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면서도 "금투세 폐지부터 기본사회 재검토까지 당 정체성이 큰 변화를 겪는 건 맞다"고 했다. 그는 "어느 하나도 '당대표 위임' 방식으로 다룰 순 없는 것들"이라며 "당내 경선은 프리패스이니 본선 경쟁력을 얻겠다는 건데, '자기부정'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