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량품” “매국노” 등으로 비하했던 더불어민주당 양문석(경기 안산갑) 후보를 두고 민주당 내부 균열이 심화하고 있다. 양 후보의 발언이 막말을 넘어 ‘해당 행위’와 다를 바 없다며 공천을 취소해야 한다는 원로들의 주장도 나오지만, 이재명 대표는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로 양 후보를 두둔하고 있다. 선거대책위원회 ‘투 톱’ 간 이견도 커졌다. 양 후보는 강성 친명(親이재명)계 원외 인사로, 이번 경선에서 친문(親문재인)계 핵심인 현역 전해철 의원을 꺾고 공천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노무현 비하' 논란에 휩싸인 양문석 경기 안산갑 예비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17일 양 후보를 만나 “수습할 수 있는 건 당신 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후보직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만난 건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총선 후보자 대회다. 양 후보가 “워낙 저한테 화가 많이 나 계신 것 같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하여튼 상황이 이렇게 됐다. 지금 스스로 수습할 수 있는 건 당신 뿐”이라며 “여기서 새로운 게 더 나오면 우리도 보호를 못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에도 입장문을 내고 “우리당에 막말 논란이 있는 후보들이 있다”며 “국민의힘은 도태우·정우택 후보에 대한 공천을 철회했고, 장예찬 후보까지 공천 철회를 검토하고 있는데 우리 당이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했다. 실제 국민의힘은 같은 날 장예찬 후보의 공천도 철회했다. 반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이 대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양 후보 문제를 두고 두 선대위원장 의견이 갈린 것이다.

양 후보는 발언 논란에 대해선 사과하면서도, 후보직 사퇴는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그는 같은 날 X(옛 트위터)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저의 글들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유가족과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많은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또 “정치 현장에서 제가 겪었던 수많은 좌절의 순간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으로부터 위로 받아왔다”고 적었다.

앞서 양 후보는 지난 2007년과 2008년 언론연대 사무총장 시절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노무현씨에 대해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지지자들은)기억상실증 환자” 등의 주장을 했다. 또 “국민 60~70%가 반대한 한미 FTA를 밀어붙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량품”이라고 했다. 이런 글이 뒤늦게 알려지자 “수많은 반성과 사죄의 시간을 가져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에선 공천을 취소하라는 요구가 계속 나온다. 당장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정세균 전 총리가 “노무현의 동지로서 양문석 후보의 노무현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묵과할 수 없다”며 당 차원의 ‘결단’을 촉구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당사에는 대통령님 사진을 걸어두고, 당의 후보는 대통령을 매국노라고 하는 괴이한 상황”이라며 “당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바로잡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오후 경기 용인시 수지구 수지구청역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다만 이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께서는 ‘대통령 욕하는 게 국민의 권리 아니냐’고 했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비난했다고 자신을 비난한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비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표현의 자유는 그 선을 넘느냐 안 넘느냐의 차이다. 국민을 폄훼하거나 소수자, 약자 비하하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안 보는 데에선 임금 욕도 한다. 우리 표현에 대해 가급적 관대해지자”고 했다.

이 대표 팬카페인 ‘재명이네마을’과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잇따랐다. 친명계 당원들은 ‘목발 경품’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된 정봉주 전 의원을 언급하며 “양문석까지 잃을 수 없다” “양문석은 무조건 지켜야한다” “전직 대통령 비판이 왜 문제냐”라고 했다. 친명계 정 전 의원은 과거 유튜브 방송에서 2015년 군 장병 2명이 DMZ 수색 작전 중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에 다리를 잃은 사건을 희화화 하며 “지뢰 경품” 등으로 표현했다. 이후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했다는 거짓 해명을 했다가 공천이 취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