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지난 2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까지 탄핵하면서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외환시장이 출렁이는 가운데 자본시장 불안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를 넘겨받으면서 경제계에서는 최 부총리가 과연 경제 컨트롤타워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 환율 1480 넘고, 코스피 2400선 붕괴… ‘혼돈의 금요일’
28일 정치권과 시장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 표결로 국정 일선에서 물러난 뒤 출렁였던 자본시장은 한덕수 대행 체제가 출범하며 다소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 대행마저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불안이 가중된 모양새다.
국회 본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27일 국내 외한 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원·달러 환율은 장 중 20원 넘게 오르며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80원을 넘어섰다.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2.7원 상승한 1467.5원으로 출발한 뒤 오전 9시 15분쯤 1470원을 돌파했다. 오전 11시 20분쯤에는 1485.5원까지 치솟았다. 오후에는 다소 안정세를 찾으며 1467.5원에 거래를 마쳤다.(오후 3시30분 마감 기준) 시장에서는 환율이 출렁인 가장 큰 원인으로 한 대행에 대한 탄핵안 표결을 꼽았다.
코스피 역시 정치 불안과 고환율 여파로 2400선이 무너지며 2390선까지 밀렸다. 다만 오후에 낙폭을 줄이면서 2400선을 회복하고 장을 마감했다. 외국인 매도가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외국인이 1755억원, 기관이 1140억원어치를 매도했다. 개인은 2146억원 순매수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안이 환율 약세, 증시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FICC리서치부장은 “국내 정치 리스크로 투자 심리가 위축돼 원화 약세 압력을 증폭시켰다”며 “외국인 매도 압박, 심리 불안, 원화 약세 압력 확대라는 악순환 고리를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예산 조기 집행 위한 자금 배정부터 위기관리까지 할 일 태산
계엄·탄핵 정국이 시작된 이후 최상목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사령탑은 위기 관리 모드에 들어갔었다. 최 부총리는 거의 매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모여 F4회의(긴급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를 열었다. 최 부총리는 27일 오전 F4회의에서 “국무총리(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 등으로 금융·외환시장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며 “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과도할 경우 단호한 시장 안정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최 부총리의 핵심 업무는 ‘한국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한국 투자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간부들과도 소통하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관리하는 것도 최 부총리의 역할 중 하나였다.
이렇게 경제 안정에 초점을 맞췄던 최 부총리에게 이제는 외교와 내치를 총괄하는 책임이 추가로 부여됐다. 대통령실과 총리실이 보좌 역할을 맡게 되지만, 국정 전반을 총괄하며 경제사령탑 역할을 잘 해내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새해를 앞둔 현재 기재부는 예산 집행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배정계획’을 확정했다. 경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전체 세출예산의 75%를 상반기에 배정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예산이 배정된 이후로는 각 부처별로 자금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자금배정’ 절차가 이행돼야 한다. 자금은 조세와 세외수입으로 우선 충당하고 부족한 자금은 국채를 발행하거나 재정증권과 한은차입 등의 일시차입으로 조달해야 한다.
새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각 분야별 추진 사항을 확인하는 것도 부총리가 해야할 일이다. 이와 동시에 외환시장을 모니터링하고 불안 신호가 감지될 때 적절히 개입해야할 수도 있다. 증시 폭락 등 자금시장 불안도 관리 대상 중 하나다.
그러나 최 부총리가 이런 업무를 수행하면서 외교와 안보를 비롯해 교육과 행정 등 새로 익히고 결정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최 부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해야 한다. 경제부총리는 NSC 소집 대상은 아니었다. NSC는 의장인 대통령과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으로 구성된다. 그동안 하지 않던 일이면서 국가 안위를 책임지는 중차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만큼 업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최상목 체제’의 지속가능성에도 물음표가 붙는다는 점이다. 최 부총리가 한 대행처럼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룰 경우, 야당의 탄핵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갈 수 있다. 최 부총리마저 탄핵될 경우 경제 컨트롤타워는 없어지는 셈이다.
최 부총리도 전날 국회 본회의 표결 전 발표한 입장문에서 “탄핵 소추가 의결된다면 계속되는 탄핵 위험으로 행정부 역량은 위축되고 전국적으로 국무위원들의 존재 이유는 없어질 것”이라며 “국가적 비상 상황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우리 경제와 민생의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를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이날 192명이 투표에 참여해 192표 찬성으로 통과됐다. 한 대행의 탄핵 표결 정족수를 놓고 ‘151석’이냐 ‘200석’이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151표’로 해석을 하면서 탄핵안이 처리됐다. 한 대행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나올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