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비상계엄·탄핵 정국에 뒷전으로 미뤄둔 민생입법 처리를 위한 논의를 재개했다. 예금자보호법과 대부업법 개정안 등 여야가 앞서 합의했던 민생법안들의 본회의 처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탄핵 정국 이후 멈췄던 민생법안 처리 논의를 위해 여야가 다시 마주 앉았다. 국민의힘 김상훈·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지난 18일 비공개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전에 여야가 우선 처리키로 합의한 민생법안을 재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김 정책위의장은 조선비즈에 “지난주에 (만나) 탄핵 전 협의했던 민생법안은 재추진키로 했다”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계류 법안, 상임위 미심사 법안 등은 양당 상임위 간사 등에게 독려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양당 회동 이후 각 당은 민생법안 심사와 합의 처리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지난 20일 의원총회를 열고 조속히 처리할 민생법안 86건을 간추렸다. 반도체특별법과 전력망확충법 등 여야가 합의 처리에 뜻을 모은 법안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본회의 일정과 무관하게 법안 심사를 위한 국회 상임위원회도 모두 가동키로 했다. 민주당은 당초 민생법안의 법안 심사 지연을 막기 위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도 검토했지만 여야 협의가 진행되면서 합의 처리를 목표로 두기로 방침을 바꿨다.
국민의힘도 원내대표 교체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출범 준비 등 혼란스러운 당내 상황 속에 민생 챙기기에 재시동을 걸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여야가 협의한 민생 법안들에 대해 “최근 각 상임위 간사단에 합의 처리를 주문했다”며 “민생법안은 조속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대부업법(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개정안과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여야가 합의처리를 약속한 대표적인 민생법안이다.
대부업법 개정안은 대부업의 자기자본 기준을 대폭(개인 1000만→1억원, 법인 5000만→3억원) 올리는 게 골자다. 또 불법 사금융을 막기 위해 성착취 추심, 인신매매, 신체상해, 폭행·협박 등을 전제로 맺은 계약이거나, 이자율이 법정 최고이자율의 3배(60%)를 초과하면 원금과 이자를 원천 무효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예금자보호법은 예금보호한도를 기존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예금자 보호한도는 정부나 위탁기관이 금융기관을 대신해 지급을 보증하는 한도다. 지난 2001년 이후 멈췄던 예금자보호한도를 24년 만에 상향하기로 여야가 뜻을 모았다.
이들 법안은 지난 3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상황이 급변하면서 정책 법안 심사 논의가 밀렸다.
다만 여야가 민생법안의 조속한 처리에 뜻을 모으면서 이들 법안의 연내 처리 가능성도 높아졌다. 양당 정책위의장은 2개 법안의 연내 처리 전망에 대해 “법사위 심사 속도에 달려 있지만 처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진성준 정책위의장)”, “양 법안은 이미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 12월 본회의 통과는 무난할 것(김상훈 정책위의장)”이라고 기대했다.
아직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 민생 법안들이 연내 처리될지는 불투명하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특별법이다. 특별법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여야는 보조금 지원 근거를 마련하자는 데는 공감대를 이뤄졌지만 연구·개발(R&D) 종사자에 대해 주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주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을 빼고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여당은 미온적이다. 이와 관련해, 오는 26일 소관 상임위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법안 심사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밀렸던 법안 심사를 한꺼번에 하게 돼 발생하는 물리적 한계도 연내 통과가 쉽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법사위 소속 의원실 한 관계자는 “(탄핵 정국으로 법안 심사할) 2주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며 “의원들은 전문위원들의 검토 보고서를 토대로 법안을 심사하는데, 타 상임위에서 법안을 (대거) 통과시키면 법사위 전문위원들이 (각각의 법안에 대해) 검토 보고서를 쓸 시간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