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이 2차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여야가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명 임명 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느냐가 표면적 쟁점이다. 여당은 대통령 직무정지 상황에서 '현상변경' 수준의 적극적인 권한 행사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헌법재판소가 정상적인 9인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며 헌법재판관을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정치권이 헌법재판관 구성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시점을 두고 힘겨루기 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국민의힘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에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지만 대통령 '직무 정지' 시에는 임명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직무 정지'인 상황에선 독립적 헌법 기구인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 밖이라는 것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2017년 3월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선애 헌법재판관을 임명했다. 그러나 이는 탄핵안이 헌재에서 인용된 이후 '대통령 궐위' 상태였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헌법적·법률적 해석이 나뉘는 상황에서 8년 전의 유일한 전례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당시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폭이 소극적'이라며 헌법재판관 임명권 행사에 반대했다는 점도 부각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8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2017년 박한철 당시 헌재소장은 대통령 지명 몫이고, 현재 공석인 헌법재판관 3명은 국회 추천 몫이기에 권한대행의 '소극적 권한행사'에 해당한다고 본다. 헌법재판관 3명의 추천 주체는 국회이기에 권한대행은 임명을 승인하는 역할만 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회 몫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여야가 이미 합의했다는 점도 들고 있다.
여야 충돌로 국회 몫 3명의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절차도 파행을 예고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여당 몫 후보로 조한창(59·사법연수원 18기) 변호사를, 민주당은 정계선(55·27기) 서울서부지방법원장과 마은혁(61·29기)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각각 추천했고, 지난 9일 선출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청문특위) 구성도 마쳤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선출안을 접수한 날로부터 15일인 오는 24일까지 인사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 청문특위 위원들이 돌연 인사청문회를 불참키로 결정했다. 당 지도부가 '권한 대행 헌법재판관 임명권 행사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 불참하더라도 오는 18일 인청특위를 열고 청문회 관련 절차를 단독으로라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인청특위 야당 간사인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인사청문회 단독 진행' 가능성에 대해 "윤 대통령 탄핵 심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여당 없이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오는 23일, 24일 청문회를 개최해 30일 본회의에서 헌법재판관 임명동의안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야당의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 이후 한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할지도 관건이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둘러싼 여야 힘겨루기는 조기 대선에 대비하기 위한 수싸움이라는 게 정치권 해석이다. 여당은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에 따른 민심을 수습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최종심을 기다리기 위해 헌재의 탄핵안 결정을 최대한 미루려고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1심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을 받은 이 대표의 선거법 형량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기 전에 '9인 체제'에서 헌재 결정이 날 수 있도록 헌법재판관 임명에 속도전을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헌법재판관 구도도 연관돼 있다. 여야가 앞서 합의한 대로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이 선출되면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은 현재 중도·보수 4인, 진보 2인 체제에서 중도·보수 5인, 진보 4인 체제가 된다. 여당은 친야 성향 인사가 늘어나면 대통령 탄핵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애초에 공정한 인사들이 추천됐다면 문제 여지가 없은 텐데 (야당이) 색깔이 너무 분명한 인사들을 추천해서 우려가 되는 것"이라며 "공정한 인사를 임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에선 당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세우면서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적극적인 권한 행사라 안 된다면,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도 못하는 것 아니겠나"라며 "탄핵 심판을 지연시키려고 하면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사건을 독촉하는 것도 명분이 약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