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정부가 21일 ‘재정 준칙 법제화’를 통한 재정개혁을 강조했다. 재정 운용에 책임성을 부여하려면 재정수지 등 건전재정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지역화폐 사업’ 등 이재명표 예산 증액을 시도하자, 재정 효율성을 강조하며 예산 정국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송언석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당정은 정치권의 선심성 예산 지출을 막기 위해 재정준칙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표는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 돈을 잘 써야 하는데, 돈을 누수 없이 잘 쓰기 위해서 반드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정치권에서 선거를 겨냥하고 표를 의식하다 보니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한다”며 “후유증은 늘 엄청나게 남기고 떠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막 퍼 쓰다가 나만 잘하고 빚잔치 실컷 하고 우리 후 세대들에게 고통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최 부총리는 “(재정 준칙이 도입되면) 재정의 역할을 제약한다는 우려가 있으나, 재정 운용의 예측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이 제고돼 재정 본연의 역할을 더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등 재정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강제하는 장치다. 나라살림(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내에서, 국가채무는 GDP의 60% 이내로 관리한다는 게 핵심이다.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적자 폭을 -2%로 축소해 중장기적으로 60%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는 내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한국과 튀르키예를 제외하고 모두 준칙을 운용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재정준칙 도입을 정책 의제로 꺼낸 것은 야당의 ‘포퓰리즘성 예산’을 부각하고, 예산 정국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앞서 전날(20일) 야당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경찰 특수활동비는 31억6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반면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2조원으로 증액한 내년도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
재정준칙이 도입되려면 국가재정법 개정 처리를 위한 야당 협조가 필수적이다. 앞서 지난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도 정치권이 재정준칙 도입에 나섰지만 다른 정치 현안에 밀려 번번이 무산됐다. 윤석열 정부도 출범 이후 재정준칙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도 야당이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재정건전성을 관리하겠다는 재정준칙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저성장·양극화 지속 국면에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입장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조선비즈에 “세입 예측이 어긋나면서 2년 동안 거의 100조원 가까운 세수 결손이 있었는데 재정준칙을 만들어도 어떤 의미가 있겠나”라며 세입 예측과 재정운용 능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생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 준칙을 고집할 게 아니라 민생 회복을 위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