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의 핵심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다. 주주 보호 장치를 강화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명목이지만, ‘지지층 달래기’ 성격도 강하다. 이재명 대표가 진보진영의 성역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는 데 동의한 뒤, 범야권은 물론 민주당 내부 비판도 커져서다. 다만 상법 개정에 대한 정부·여당과 재계의 반대가 거세 실제 시행은 쉽지 않다.
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지상 활성화 태스크포스(이하 국장부활 TF)’는 8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국장 부활 TF가 지난 6일 출범한 이후 처음 열린 토론회다.
토론회에선 이사의 충실 의무를 확대하는 법 개정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상법 제382조의 3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의 이익 보호’에서 ‘회사·주주의 이익 보호’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배주주의 경영행위로 발생하는 소액주주의 피해를 줄이면,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돼 국내 주식시장 저평가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이날 발제자로 참석한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기업지배구조 원칙은 지배주주 권한 남용을 통제하는 게 거버넌스의 핵심”이라며 “60~70년 된 한국 전통 상법은 지배주주의 경영 판단에 주주가 참여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회사로부터 받은 76조원의 스톡옵션을 법원 판결로 반환한 사례를 언급하며 “주주 충실의무는 해외에서도 보편적인 제도이자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했다. 이어 “주주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필수”라며 “상법 개정은 낙수 효과와 선순환, 나아가 선진국으로 올라서기 위한 제도 개선”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금투세 폐지와 연계된다. 이 대표는 지난 4일 “주식시장에 기대고 있는 1500만 주식투자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정부·여당의 금투세 폐지에 동의했다. ‘금투세 시행’을 당론으로 채택한 지 2년여 만에 이를 폐기한 것이다.
국장 부활 TF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7월 발표한 ‘5대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기존 법안들을 검토해 당론 채택할 계획이다. 5대 부스트업에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독립이사 선임 의무화 ▲감사 분리선출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 ▲전자주주총회 의무화·권고적 주주제안 허용 등이 담겼다.
◇재계 “경영권 불안”… 정부·여당도 반대
재계의 반대 입장은 확고하다.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다양한 만큼, 주주 충실의무가 도입되면 경영 행위마다 소송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미 법률상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가 명시돼있어 주주 충실의무와 중복된다는 주장도 있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토론회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면, 이사회에 참여하는 인사들이 어떤 행위 지침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겠느냐는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된다”고 했다. 또 “이사에 대한 개별 소송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상법 개정에 고려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다만 여권에선 온도차가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5일 상법 개정안에 대해 “(주주 보호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확신이 어렵다”고 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같은 날 “기업의 주주는 외국인 투자가, 기관투자가, 사모펀드, 소액주주 등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주주들이 있다”며 “이해관계가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충실 의무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고 했다.
반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주주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한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최근에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두산그룹 합병 사례를 언급하며 주주 보호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원장도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주주 충실의무에 대해 “정부에서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고, 합리적 지점을 찾겠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이 지점을 주목하고 있다. 국장 부활 TF 단장인 오기형 의원은 “한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 전반적인 주식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방향에 동의한다고 답했다”며 “이복현 원장도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논의에 주도적 참여했다”고 말했다.
◇금투세 폐지에 ‘세수 구멍’… 답 못내는 정치권
금투세 시행에 맞춰 낮췄던 증권거래세의 복원 문제도 논의가 필요하다. 거래세는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2021년부터 단계적으로 낮춰졌다. 올해 코스피 0.03%, 코스닥 0.18%로, 2020년보다 각각 0.07%포인트(p)씩 인하됐다. 내년에는 코스피 거래세가 사라지고, 코스닥은 0.03%p 낮은 0.15%로 더 내려간다.
거래세 이슈가 부상한 건 세수결손 때문이다. 금투세 폐지를 상쇄할 세수를 확보하지 않으면, 34조원(10월 기준)의 세수 결손이 더 커진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세 총액은 6조802억원으로, 2년 전인 2021년(10조2556억원)보다 40.7% 줄었다. 거래세율이 낮아져 걷지 못한 세금은 4조5000억원 정도다. 정부가 예상한 향후 3년 간 금투세 세수는 5조원 규모인데, 이 금액이 고스란히 빠지는 셈이다.
민주당도 세수 부족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다만 ‘증세’ 이슈인 만큼, 쉽사리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6일 국장 부활 TF 회의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금투세 폐지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면 증권거래세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기재위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답하더라”며 “거래세 복원 문제는 여당과 협의하겠다”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