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22대 총선 참패 원인과 향후 개혁 과제를 담은 총선 백서를 28일 공개했다. 백서는 지난 4월 총선의 주요 패인으로 ‘불안정한 당정 관계’, ‘미완성 시스템 공천’ 등을 꼽았다. 총선을 앞두고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대사 임명, 의대 정원 정책 등 대통령실발 이슈가 연이어 터지면서 정권심판론이 불붙었고, 당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선거 참패를 초래했다는 게 내부 진단이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총선을 지휘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대해선 내세웠던 ‘시스템 공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사천 논란까지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조정훈 국민의힘 총선백서TF 위원장이 지난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총선 백서 특별위원회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총선백서특별위원회는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276쪽 분량의 백서 전문을 공개했다. 백서 공개는 22대 총선 후 201일 만이다.

백서는 22대 총선 패배 원인으로 ▲불안정한 당정 관계로 국민적 신뢰 추락 ▲미완성 시스템 공천 ▲절차적 문제와 확장성 부재를 야기한 비례대표 공천 ▲집권여당의 승부수 전략(공약) 부재 ▲조직 구성 및 운영의 비효율성 ▲효과적인 홍보 콘텐츠 부재 ▲당의 철학과 비전 그리고 연속성 부재 ▲무늬만 싱크탱크? 기능 못한 여의도연구원 등을 꼽았다.

백서는 총선 패인으로 ‘불안정한 당정 관계’를 맨 먼저 거론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총선은 집권 2년 차 여당으로서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정치적 공동운명체인 정부의 국정운영 평가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호주대사 임명, 시민사회수석 발언 논란, 의대 정원 정책, 대파 논란 등 연이은 이슈가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였지만, 당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해당 이슈들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정부의 기조를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당정 사이에 건강하고 생산적인 긴장감이 조성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총선 전 불거졌던 의대 정원 이슈에 대해선 “당 지도부가 모든 의제를 열어놓고 대화를 시작할 것을 대통령실에 제안했고 대통령 대국민담화가 변곡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국 당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당정 간 다른 목소리를 내고 대립 관계를 보이는 순간 당정갈등이 집중 부각될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싸우지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선거가 끝났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짚었다.

지난 7·23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기된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도 담겼다. 백서는 “’영부인 문자 논란’은 비대위원장과 대통령실 모두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으며 총선 과정에서 원활하지 못했던 당정관계가 주요 패배 원인이었음을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확인해줬다”고 평가했다.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내걸었던 ‘시스템 공천’에 대해선 ‘반쪽짜리’라고 평가했다. 백서는 “당이 일찍부터 인재 영입을 준비하지 못해 후보군에 한계가 있었고, 사실상 총선 직전에 만든 기준은 많은 사람이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 “일부 출마자들은 경선·결선 기준이 다소 비합리적이었다는 점, 현역의원 재배치나 국민 추천제같이 기존의 원칙과 기준에서 벗어난 공천 사례들이 발생하며 시스템이 100%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담았다.

‘비례대표 공천’에 대해서도 “이례적인 비례대표 연속 공천, 징계 및 형사처벌 전략자 공천, 호남 인사와 사무처당직자 배려 부족 등 이슈가 불거지며 사천 논란으로 막판 내홍을 야기했다. 특히 공천 신청을 하지 않은 후보가 당선 안정권에 배정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례 공천에 대해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전달됐으나 지도부는 공천을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선거 전략 부재와 관련해선 “정부 정책과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선거전략을 체계적으로 세워야 했으나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미 예측됐던 야당의 정권심판론 공세에도 속수무책이었다”며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일관되게 밀어붙인 데 반해 우리는 운동권 심판,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읍소 전략으로 변하며 일관성이 없었다”고 했다.

총선 당시 여의도연구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혹평했다. 백서는 “여의도연구원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소수의 후보자들에게만 비공식적으로 공유됐다”며 “전반적인 사기 저하 등을 방지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알려준 것으로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인 선거운동을 위해 보다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후보자들은 답답함과 불만을 토로했다”고 담았다.

향후 선거 승리를 위한 6대 개혁과제로는 ▲당의 정체성 확립 및 대중적 지지기반 공고화 ▲미래지향형·소통형 조직 구조로 개편 ▲빅데이터 기반 정책 개발 및 홍보 역량 강화 ▲공천 시스템 조기 구축 및 투명성 강화 ▲취약지역 및 청년·당직자 배려 기준 구체화 ▲비전을 가진 싱크탱크 구축 및 미래를 위한 준비 등을 제시했다.

총선 백서는 22대 총선 후 6개월여 만에 공개된 것이다. 당초 지난 6월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전당대회, 재보궐 선거 등을 앞두고 계속 미뤄졌다. 비대위원장으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한 대표에 대한 평가가 담기면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당 지도부가 백서 발간을 미룬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당 격차해소특별위원회 관련 행사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총선백서에서 패배 요인이 불안정한 당정관계로 꼽힌다’는 물음에 “평가는 백서가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훈 총선백서특위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도 당정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앞으로 집권여당으로서 당정관계를 어떻게 운영해야 국민에게 지지를 받을지 고민하는 과정에 총선이 큰 시사점을 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