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여야의정 협의체’를 다시 띄웠다. 참여를 결단한 일부 의료계 단체와 먼저 협의체를 발족해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협상의 장을 조속히 마련하자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빈손’ 면담 이후 당 내홍이 짙어지자 민생 현안인 의료개혁으로 국면을 전환하고 당정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차원으로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정부·여당이 위기”라며 “위기를 극복하려면 민심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변화하고 쇄신해야 한다”며 주요 과제로 의정갈등 장기화로 인한 국민 불안 해소를 꼽았다.

그러면서 의정갈등 문제를 풀기 위해선 여야의정 협의체를 이른 시일 내 발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이 문제는 국민의 건강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것”이라며 “문제를 해결하자. 겨울이 오고 있다. 여야의정 협의체를 출발시키자”고 했다.

여야의정 협의체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처음 제안했고, 한 대표가 호응해 지난달 6일 공식 제안하면서 협의체 구성을 위한 물밑 협상이 진행됐다. 국회와 의료계,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꾸려 의정 갈등의 핵심 쟁점인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한 대표가 제안한 지 한 달 반 가까이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의정갈등의 핵심 쟁점인 2025년도 의대 증원 등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다. 여권에 따르면 한 대표는 꾸준히 양측 설득 작업을 해왔고, 의료계 학술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생 교육을 담당하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가 전날(22일)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를 결정했다. 지난 2월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발표 이후 의료계가 정부 협의체에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의 참여로 협의체 구성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지만 야당이 제동을 걸면서 빨간불이 켜졌다. 국민의힘은 협의체를 우선 출범시키고 향후 다른 단체들의 합류를 끌어내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의료사태의 핵심 축인 전공의, 의대생 대표 등이 참여해야 협의체가 정상 가동할 수 있다며 현 단계로선 출범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부정적인 반응에 한 대표는 “이 문제로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어떻게든 해결의 물꼬를 트는 데 집중하자”고 압박했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어렵게 마련된 여야의정 협의체에 딴지를 걸거나 어깃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며 대승적 참여를 촉구했다.

여야가 입장차를 어느 정도 좁힐지가 협의체 출범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본지에 “전공의 단체 참여가 조건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전공의를 대의하거나 설득하거나 강제할 만한 단체가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의료계 쪽 참여가 가닥이 잡히는 상황인 것 같아 (민주당과) 협의는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오는 28일 출범하는 ‘여야 민생공통공약추진협의체’에서 이와 관련한 협조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한 대표가 여야의정 협의체를 다시 띄운 시점이 공교롭다는 시각도 있다. 그는 윤 대통령과의 면담 이튿날인 전날(22일) 두 곳 단체의 협의체 참여 소식을 알리며 “여야의정 협의체가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민주당과는 사전에 조율하지 않은 상황에서 설익은 메시지를 낸 것이다. 김건희 여사 관련 3가지 요구사항을 두고 대통령실, 친윤(윤석열)계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민생 이슈로 국면전환하고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의정갈등 장기화 문제는 지난 8월 29일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친윤계 의원들도 정부를 향해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당 안팎 공감대가 넓은 현안이다.

최수영 시사평론가는 “용산의 벽에 막힌 상황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가동은 현재 한 대표의 유일한 카드”라며 “여권 투톱으로서의 존재감과 대안 세력 모습을 보여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출범이 안 되더라도 민생 현안을 꺼내 의제를 재선점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문제를 파고드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