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대표도 승부사 기질이 있다. 뭔가 승부수를 던질 거라 본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빈손 회담’ 이후, 정치권의 시선은 ‘한동훈의 승부수’를 향하고 있다. 한 대표가 핵심 의제로 꺼냈던 김건희 여사 리스크 대응 방안에 대해 윤 대통령과 이견을 좁히지 못해서다. 친한(親한동훈)계에선 한 대표가 해병대원 특검(특별검사)법처럼 ‘제3자 추천 방식’의 김건희 특검법을 추진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야당도 ‘한동훈의 결단’을 명분으로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 대표는 22일 오후 친한계 단체 대화방에 ‘긴급 만찬’을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 모처로 예정된 만찬에는 10여명 의원이 참석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는 전날 윤 대통령이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를 거부한 것과 관련한 대응책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가 ‘정면돌파’를 예고한 직후여서 ‘김건희 특검법’이 언급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한 대표는 이날 인천 강화풍물시장을 방문해 기자들과 만나 “오직 국민만 보고 민심을 따라서 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전날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거부하고, 면담 직후 추경호 원내대표를 따로 만찬에 불러 ‘한동훈 홀대론’이 커진 상황에 나온 말이다. 추 원내대표는 김 여사 의혹 등 민감한 이슈마다 한 대표와 온도 차를 보였던 인물이다.
그간 한 대표는 김 여사가 ▲대외 활동을 중단하고 ▲관련 의혹을 규명하는 절차에 적극 협조하며 ▲이른바 ‘김건희 라인’에 대한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여사가) 이미 자제하고 있고, 단순 의혹 제기일 뿐”이라며 사실상 거절했다.
정치권은 내달 본회의에 오를 ‘김건희 특검법’을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이 세 번째 발의한 특검법은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코바나컨텐츠 전시회 뇌물성 협찬 의혹 ▲명품가방 수수 의혹 ▲임성근 등에 대한 구명로비 의혹에 더해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을 수사 대상에 추가했다.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같은 달 말에는 재표결에 부칠 수 있다.
친한계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대표로서는 이제 여기서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지금 구조로는 못 받지만, 채상병 특검 때 말했듯 이 문제도 제3자 해법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박 의원이 언급한 ‘제3자 해법’은 특정 정당과 무관한 인물에 특별검사 추천권을 주는 법이다. 현재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은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독식한다. 한 대표는 물론, 민주당에서조차 “대놓고 거부하라고 만든 법”이란 말이 나온다. 반면 한 대표에게는 ‘협상 공간’이 될 수 있다. 실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날 한 대표에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하자, 한 대표는 “민생 정치를 논의하자”며 곧바로 응했다.
이와 관련해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여야 합의를 통한 ‘수정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SBS 라디오에서 “한 대표조차 법조인으로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했던 부분들이 있지 않나”라며 “이재명 대표가 조금 양보해서라도 특검을 통과시키는 게 대한민국을 다음 단계로 끌고 갈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또 “그런 부분들은 (한 대표와) 충분히 타협할 수 있지 않나”라며 “한 대표가 정치를 할 여지를 야당이 만들어주자”고 했다.
◇“중간지대 현역 합류 없으면 특검법 통과 어려워”
문제는 한 대표의 원내 장악력이다. 원외 인사로서 현역 의원들을 모으기 쉽지 않다. 원내사령탑인 추 원내대표와 사실상 대척점에 서 있는 것도 한 대표의 한계점이다. 윤 대통령이 면담 직후 추 원내대표와 중진 의원들을 부른 것 역시 한 대표의 원내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진욱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이 추 원내대표를 따로 부른 건 ‘특검법 이탈표 단속’ 차원만이 아니다”라며 “친윤·친한 중간지대 의원들을 단속하고, 사실상 한 대표를 쫓아낼 시나리오를 가동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한 대표도 ‘제3자 특검법’을 밀어 붙이려면 중간지대 의원들이 합류해줘야 한다”며 “결국 여당이 더 이상 막아줄 수 없는 ‘명태균 이슈’ 등 치명타가 터져야 한 대표에 기회가 온다”고 했다.
최근 현역 의원 20여명이 한 대표와 회동했지만, 이들이 한 대표를 확실히 지원할 지도 미지수다. 11월 예산 정국에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지역구 예산 확보인데, 이 주도권을 원내대표가 쥐고 있어서다. 설사 특검법이 통과되더라도 여권 전체가 혼돈을 피할 수 없다. 사실상 분당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한 대표가 현역 20여명과 만난 건 교섭단체 기준 의석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여지를 보이면서 당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라며 “특검법 통과에 일부 친한계가 동조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통과 당시와 같을 거다.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