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대표도 승부사 기질이 있다. 뭔가 승부수를 던질 거라 본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빈손 회담’ 이후, 정치권의 시선은 ‘한동훈의 승부수’를 향하고 있다. 한 대표가 핵심 의제로 꺼냈던 김건희 여사 리스크 대응 방안에 대해 윤 대통령과 이견을 좁히지 못해서다. 친한(親한동훈)계에선 한 대표가 해병대원 특검(특별검사)법처럼 ‘제3자 추천 방식’의 김건희 특검법을 추진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야당도 ‘한동훈의 결단’을 명분으로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한 대표는 22일 오후 친한계 단체 대화방에 ‘긴급 만찬’을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 모처로 예정된 만찬에는 10여명 의원이 참석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는 전날 윤 대통령이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를 거부한 것과 관련한 대응책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가 ‘정면돌파’를 예고한 직후여서 ‘김건희 특검법’이 언급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한 대표는 이날 인천 강화풍물시장을 방문해 기자들과 만나 “오직 국민만 보고 민심을 따라서 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전날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거부하고, 면담 직후 추경호 원내대표를 따로 만찬에 불러 ‘한동훈 홀대론’이 커진 상황에 나온 말이다. 추 원내대표는 김 여사 의혹 등 민감한 이슈마다 한 대표와 온도 차를 보였던 인물이다.

그간 한 대표는 김 여사가 ▲대외 활동을 중단하고 ▲관련 의혹을 규명하는 절차에 적극 협조하며 ▲이른바 ‘김건희 라인’에 대한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여사가) 이미 자제하고 있고, 단순 의혹 제기일 뿐”이라며 사실상 거절했다.

정치권은 내달 본회의에 오를 ‘김건희 특검법’을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이 세 번째 발의한 특검법은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코바나컨텐츠 전시회 뇌물성 협찬 의혹 ▲명품가방 수수 의혹 ▲임성근 등에 대한 구명로비 의혹에 더해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을 수사 대상에 추가했다.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같은 달 말에는 재표결에 부칠 수 있다.

친한계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대표로서는 이제 여기서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지금 구조로는 못 받지만, 채상병 특검 때 말했듯 이 문제도 제3자 해법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박 의원이 언급한 ‘제3자 해법’은 특정 정당과 무관한 인물에 특별검사 추천권을 주는 법이다. 현재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은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독식한다. 한 대표는 물론, 민주당에서조차 “대놓고 거부하라고 만든 법”이란 말이 나온다. 반면 한 대표에게는 ‘협상 공간’이 될 수 있다. 실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날 한 대표에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하자, 한 대표는 “민생 정치를 논의하자”며 곧바로 응했다.

이와 관련해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여야 합의를 통한 ‘수정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SBS 라디오에서 “한 대표조차 법조인으로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했던 부분들이 있지 않나”라며 “이재명 대표가 조금 양보해서라도 특검을 통과시키는 게 대한민국을 다음 단계로 끌고 갈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또 “그런 부분들은 (한 대표와) 충분히 타협할 수 있지 않나”라며 “한 대표가 정치를 할 여지를 야당이 만들어주자”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 앞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중간지대 현역 합류 없으면 특검법 통과 어려워”

문제는 한 대표의 원내 장악력이다. 원외 인사로서 현역 의원들을 모으기 쉽지 않다. 원내사령탑인 추 원내대표와 사실상 대척점에 서 있는 것도 한 대표의 한계점이다. 윤 대통령이 면담 직후 추 원내대표와 중진 의원들을 부른 것 역시 한 대표의 원내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진욱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이 추 원내대표를 따로 부른 건 ‘특검법 이탈표 단속’ 차원만이 아니다”라며 “친윤·친한 중간지대 의원들을 단속하고, 사실상 한 대표를 쫓아낼 시나리오를 가동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한 대표도 ‘제3자 특검법’을 밀어 붙이려면 중간지대 의원들이 합류해줘야 한다”며 “결국 여당이 더 이상 막아줄 수 없는 ‘명태균 이슈’ 등 치명타가 터져야 한 대표에 기회가 온다”고 했다.

최근 현역 의원 20여명이 한 대표와 회동했지만, 이들이 한 대표를 확실히 지원할 지도 미지수다. 11월 예산 정국에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지역구 예산 확보인데, 이 주도권을 원내대표가 쥐고 있어서다. 설사 특검법이 통과되더라도 여권 전체가 혼돈을 피할 수 없다. 사실상 분당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한 대표가 현역 20여명과 만난 건 교섭단체 기준 의석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여지를 보이면서 당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라며 “특검법 통과에 일부 친한계가 동조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통과 당시와 같을 거다.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