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공개회의에서 “국민 걱정과 우려를 이번에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며 김건희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과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요구했다. 10·16 재·보궐선거에서 텃밭 2곳 수성에 성공한 다음 날 김 여사를 향해 비판 수위를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여권 악재 속 보선 승리는 ‘당정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라며, ‘김건희 여사 리스크’ 해소를 고리로 당정 쇄신 드라이브를 건 셈이다. 내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주도권을 쥐고 수평적 당정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한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여사 관련 일들로 모든 정치 이슈가 덮이는 것이 반복되면서 우리 정부의 개혁 추진들이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 걱정과 우려를 이번에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 관련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 ▲의혹 규명을 위한 적극적인 협조 등 3가지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한 대표는 취임 이후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를 언급한 것 외에는 발언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얽힌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과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여권 전체 악재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재보궐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김 여사를 향한 발언 수위를 높여왔다. 이날은 기존 요구에 ‘의혹 규명 적극 협조’를 더했다. 한 대표는 검찰의 김 여사 도치이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무혐의 처분에 대해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조치를 신속하게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내용은 물론 메시지 전달 방식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간 한 대표는 취재진이 당내 목소리에 대한 의견을 물을 때만 답하는 방식으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은 생중계되는 공개회의 모두발언에서 먼저 입장을 낸 것이다.

보궐 선거의 민심이 ‘변화’을 요구했다고 보고, ‘당정 쇄신’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이날 보선 승리에 대해 “나라를 생각해서 너희에게 기회를 한번 줄 테니 ‘한번 바꿔 봐라’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쇄신하고 변화해야 야당의 헌정 파괴 시도에 맞설 수 있다”며 “제가 앞장서서 정부·여당을 쇄신하고 변화시켜 야당의 헌정 파괴 시도에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했다. 서범수 국민의힘 사무총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보궐 선거 민심에 대해 “새롭게 쇄신하고 변화하라, 국민 눈높이에 맞춰서 가라는 것”이라고 했다.

내주 예정된 윤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도 김 여사 관련 조치를 포함한 쇄신안이 중점적으로 언급될 전망이다. 한 대표는 김 여사 관련 조치가 독대 의제로 오를지에 대해선 답변을 피하면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 사무총장은 “독대했을 때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며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 측은 부산 금정과 인천 강화 승리로 ‘변화’ 민심을 확인한 만큼, 독대에서도 주도권을 쥐고 민심을 적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비(非)한동훈계 일각은 한 대표가 대통령실과 각을 세워 여권 분열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윤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과 싸워 대통령이 되었다고 본인도 그렇게 따라 하는 모양인데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차별화는 임기 말에나 가서 하는 것이다. 선무당 짓 그만하시고 당정 일체로 이 혼란을 수습하라”라고 비판했다. 친윤(윤석열)계인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전국 광역의원 연수 행사에서 “다음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당 분열이 있으면 안 된다. 단결하고 뭉쳐야 한다”며 당정 화합을 강조했다.

이 같은 목소리에 한 대표는 “민심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민심을 반영하는 정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당대표 임무”라며 “저는 제 임무를 다하려고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