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로 환수되지 않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일가에 편법으로 상속됐다는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와 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출연금으로 설립된 공익법인으로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송언석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재위에서 열린 국세청·서울지방국세청·중부지방국세청·인천지방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노태우 비자금 관련 질의 화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뉴스1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국세청 공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노 전 대통령 일가의 편법 상속 수단으로 지목되는 동아시아문화센터의 비정상적 운영 실태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김영환 의원이 시간순으로 분석한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흐름도’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일가는 1997년 2628억원의 비자금 추징을 선고받은 후 경제적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추징금 납부를 미뤄왔으나 같은 시기에 900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별도 관리한 정황이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재판에서 드러났다.

김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차명계좌 등을 동원해 유배당 저축성보험(공제) 210억원을 가입했고, 아들 노재헌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2016∼2021년 147억원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물려준 것으로 해석했다.

앞서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은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김 여사가 2000∼2001년 차명으로 농협중앙회에 보험료 210억원을 납입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1998년 김 여사가 904억원 메모를 작성한 이후로, 추징금 884억원을 미납하고 더 이상 돈이 없다고 호소하던 시기다. 김 여사는 저축성보험 차명계좌 가입 문제 등으로 2007년 검찰조사와 국세청 조사를 받기도 했다.

김 여사가 동아시아문화센터에 95억원을 기부한 2020년 결산서류 출연자 목록에 김 여사와 아들 노 이사장의 관계가 ‘해당 없음’으로 돼 있는가 하면, 2023년 결산서류에 기부금 잔액이 0원으로 제출됐다가 지난 9월 20일 97억원으로 수정되는 등 부실 관리 정황도 있다고 김 의원은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동아시아문화센터가 공익법인인데도 인건비를 제외한 순수 공익사업 지출 비용은 총자산 대비 0.3%인 8000만원가량에 불과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노태우 일가가 보유한 거액의 불법 비자금이 다양한 수단으로 상속·증여되고 있다는 단서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목적 사업 등 의무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공익법인은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김 의원이 이날 국세청을 대상으로 한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강민수 국세청장을 향해 “국세청이 2007년 김 여사의 저축성보험 차명계좌 가입 문제를 조사했을 당시 왜 덮었느냐”고 묻자 강 청장은 “자금출처 조사를 나갔을 때 금융자료나 증빙 보관 기간이 있다. 그 기간을 넘어서면 손댈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답변했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의원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