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체육회에 맡겼던 2000억원 짜리 국가사업 권한을 사실상 박탈하고, 사업 주체를 재검토키로 했다. 태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기존 국제스케이트장을 대체할 시설 마련이 시급한데, 부지 선정권을 가진 체육회가 의도적으로 사업을 미룬 데 대한 징계 조치다. 문체부는 체육회가 내년 1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3선 도전을 염두에 두고, 지자체 표심을 잃지 않기 위해 사업을 중단했다고 봤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부지 선정위원회 등을 거치지 않고 체육회 이사회 단독 의결로 대체 부지를 선정하는 것이 적법한가’라는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대해 “국가대표 훈련시설인 국제스케이트장을 체육회가 결정하는 것이 의문”이라며 “(사업 주체 선정 방식 등을) 따로 만들거나 문체부가 직접 관할하는 것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정 의원은 특히 “체육회가 부지선정위원회 인원구성 및 회의자료, 회의록 등을 전혀 보고하지 않고 ‘깜깜이’로 하고 있다”면서 “사업이 (기존 마감 시한인) 10월에 종료 되면, 체육회에 위탁한 현재의 타당성 용역은 어떻게 되느냐. 체육회가 그대로 진행을 하는 건가, 중단시키는 건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은 “(체육회의 권한을) 재고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일단 중단시켜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또 “항간에는 체육회가 선거를 의식해서 사업을 일부러 연기했다는 의혹도 있다”면서 ”지자체마다 시도 체육회장들이 투표권을 갖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치 경쟁에서 탈락한 지자체의 표가 내년 1월 회장 선거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사업을 의도적으로 미뤘다는 것이다.
◇체육회, 돌연 ‘부지선정 중단’… 문체부 “징계 검토”
전날 정 의원이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앞서 문체부는 국제스케이트장 대체 시설 타당성 용역을 체육회에 맡겼다. 이에 강원 춘천·원주시·철원군, 경기 양주·동두천·김포시, 인천 서구 등 7개 지자체가 유치 경쟁을 벌였다. 동계스포츠 인프라를 유치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당초 문체부가 제시한 사업 마무리 기한은 올해 4월이었다. 기존 스케이트장 철거 시한이 2027년인 만큼, 긴 공사 기간을 고려해 부지를 신속하게 선정하자는 목적이었다. 이후 체육회는 평가 등을 이유로 사업 기간을 올해 10월까지 미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체육회가 부지 선정을 사실상 자체 중단한 사실이 드러났다. 체육회가 지난 8월 28일 이사회를 열어 부지선정 절차를 돌연 연기한 것이다. 사업 기간 연장도 추가로 요청했다.
정 의원 측이 이와 관련해 ‘회장 선거에 국가사업을 이용하려 한다’고 문제 삼자, 문체부는 ▲체육회가 요구한 기한 연장 불허 등 징계 ▲사업주체 변경 등을 검토키로 했다. 또 “올해 10월 사업 종료에 따라 체육회 용역을 중지할 예정”이라며 “정산 과정에서 ‘의도적 무(無)성과’에 대한 징계 등을 엄밀히 검토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