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 자녀를 둔 A씨는 최근 아이의 키즈폰 번호를 급히 변경했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오빠, 다 해줄게’ ‘원나잇해요’라는 문자를 받아서다. 연락처에 등록된 번호 외 수신차단 설정을 했지만, 아이는 성인 사이트로 연결되는 URL과 메시지에 그대로 노출됐다.

#초1 학부모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아이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사준 키즈폰에 ‘통장 압류 예정’ 메시지가 온 것이다. 미납액과 은행 계좌, 지급명령 사건번호가 찍힌 독촉 문자였다. B씨는 “도박, 투자 문자도 왔었다”며 “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계속 오더라”라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키즈폰 가입자 60만, 스팸 근절책은 無

키즈폰 사용자의 음란·광고문자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가 ‘사용된 적 없는 전화번호’ 18만여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키즈폰 가입자에게 새 번호를 부여할 의무 규정이 없는 데다, 통신사 차원의 근본적 대책도 내놓지 않아 동일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통신 3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31일 기준 키즈폰 가입자는 총 60만명 규모다.

키즈폰은 만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제작된 단말기다. 보호자가 ‘위치 추적’과 ‘실시간 원격 통제’를 할 수 있다. 어린 자녀의 동선을 확인하고, 유해 콘텐츠 접촉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목적으로 만든 키즈폰까지 음란 문자에 노출된 것이다.

현재 통신사는 키즈폰 가입자에게도 대부분 ‘사용된 적이 있는 번호’를 부여한다. 이전 사용자의 체납·성인 사이트 접속 등의 이력이 남아있는 한, 키즈폰 사용자도 관련 문자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를 구조적으로 차단할 방안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다. 당장은 ‘사용된 적이 없는 번호’를 부여하거나 에이징(Aging·이용자가 반납해 90일 간 사용금지) 기간을 늘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6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5차 전체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새 번호 주거나 에이징 기간 늘려야”

통신 3사가 보유한 ‘미사용 중’ 번호는 약 515만 개다. 미사용 번호는 ▲사용된 적이 있는 번호 ▲사용된 적이 없는 번호 ▲에이징 중인 번호로 나뉜다. 통신사가 약관에 명시한 에이징 기간은 90일이다. 어떤 이력을 지닌 번호든 석 달만 지나면 사용이 가능해진다.

이 중 ‘사용된 적이 없는 번호’는 3사 총합 약 18만개다. 현 규정상 번호 부여는 통신사 고유 권한이다. 키즈폰 사용자가 ‘스팸 피해’를 이유로 번호 변경을 요구할 순 있지만, 쓴 적 없는 번호를 받을 권한은 없다. 시스템을 개선해 근절하거나 사용 전력이 없는 번호를 주지 않는 한, 스팸문자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 의원은 “불법 스팸문자가 어린이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다”며 “통신사가 어린이 사용자 보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인식부터 제대로 갖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궁극적으로 불법 스팸문자를 근절할 실효적 방안을 조속히 찾되, 현재 발생하고 있는 피해를 막는 것도 시급하다”며 “보호자가 희망하는 경우, 키즈폰에는 아예 사용된 적 없는 번호를 우선 부여하고, 이미 사용된 번호를 줄 때는 에이징 기간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