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21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여야가 처음으로 합의한 법안이 됐다. 정부·여당이 대안을 마련했고 야당도 한발 양보하면서 이뤄졌다. 석달 가까이 정쟁을 이어가며 법안 단독 처리와 재의요구권 행사, 재표결 후 자동폐기라는 입법 마비 상태를 해소한 것이다. 여야 의원들은 “모처럼 여야 합의로 통과돼서 의미있고 보람있게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야 지도부가 비쟁점 민생 법안을 8월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뜻을 모은 만큼 오는 28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 통과가 전망된다.
국토위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지난달 18일과 이달 1일, 전날(2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법안소위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댄 끝에 위원회 차원의 대안을 마련했고 이날 국토위에서 최종 의결한 것이다.
국토위에서 의결된 개정안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지원과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우선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해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매로 사들여 경매 차익으로 피해를 보상한다. LH가 산정한 감정가격(시세)과 실제 경매에서 낙찰받은 가격의 차이가 경매 차익인데, 피해주택이 시세보다 평가절하된 부분을 피해자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다. 방안은 ▲피해자가 공공임대주택이 된 피해 주택에서 그대로 거주할 경우 최장 10년간 무상 거주할 수 있게 하는 안 ▲피해 주택 거주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경매 차익을 피해자에게 일시 지급하는 안 ▲피해자가 다른 민간 주택 거주를 원할 경우 LH가 집주인과 직접 전세 계약을 맺고 LH는 피해자와 임대차 계약을 맺어 재공하는 재임대 안이 있다.
다만 경매차익, 임대료 지원금이 피해보증금을 넘을 순 없도록 했다. 예를 들어 피해 금액이 500만원이고 1년 무상 거주로 손해를 온전히 회복했다면 곧바로 피해자 지위가 해제돼 더이상 공공임대주택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반면 임대료 10년 지원 후에도 경매 차익이 남으면 일시 지급받고 퇴거할 수 있도록 했다. 경매차익이 10년간 임대료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재정을 추가로 지원하는 근거도 포함했다. 피해자가 10년 거주 후에도 퇴거를 원치 않을 경우엔 일반 공공임대주택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10년간 더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 인정 범위도 넓혔다. 피해자를 ‘임차주택을 인도 받거나 인도받았던 자를 포함한다’로 정의했던 조항을 ‘인도받았거나 인도가 불가능했던 경우를 포함한다’로 바꿨다. 이에 따라 이중계약 또는 깡통전세로 피해를 본 이들도 구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피해자로 인정되는 임차보증금 한도를 3억 원 이하에서 5억 원 이하로 상향했다.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2억 원까지 상향 조정할 수 있는 만큼 최대 7억 원의 임차보증금 피해를 본 이들까지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셈이다. 아울러 기존안에서는 낙찰 차액을 받고 퇴거할 수 있는 퇴거 사유를 직장 이전이나 질병 치료 등으로 제한했지만 대안에서는 이를 없앴다.
피해자 보호 방안 역시 강화했다. 건축법을 위반한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공공임대주택 사업자가 매입한 경우 시정 명령이나 이행 강제금 부과 등의 조치를 유예하고 사용 승인 또는 용도 변경 특례를 부여하기로 했다. 또 전세 사기 피해자 등에 대한 전세 관련 대출 채무의 불이행 또는 대의 변제 등록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아울러 전세사기 피해 주택이 소재한 지방자치단체장이 해당 주택의 안전 관리 및 감독 업무를 수행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 피해자 지원책을 보완하고 추가 전세 사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6개월마다 전세 사기 실태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국토위에 보고토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야당에선 법 시행 후 정부 집행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면서, LH 측에 예산과 인력 지원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이 일을 앞으로 해나갈 주체 측면에서 국토교통부가 전세사기 문제 전체를 LH에 떠넘긴 측면 있다”고 했다. 이어 “LH는 지금부터 몇 천, 몇 만 건의 경매 물건을 낙찰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공공임대주택과 전세임대 주택을 매칭해줘야 한다”며 “수백명이 몇년 간 전업으로 달라붙어야 원활한 구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법안이 됐다는 건 보상과 피해 보전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는 거지, 법안이 통과한 자체가 끝난 게 아니고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실질적인 보상이 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답했다.
맹성규 국토교통위 위원장은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피해자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더 진척된 지원 방안을 담은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한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의미있는 일이었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