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종합부동산세와 금융투자세에 이어 상속세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징벌적 성격으로 도입된 과세 체계가 집값 상승 등과 맞물려 중산층 세 부담을 키운다는 게 핵심 이유다. 이 제도들은 진보진영의 ‘성역’이자 당 정체성의 한 축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정책적 외연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내부 논의에도 속도가 붙었다.
14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국세청 차장 출신이자 민주당 원내부대표단 소속인 임광현 의원은 이달 안에 ‘상속세 일괄공제액 확대’를 골자로 한 세법개정안을 대표발의한다. 최고세율은 50%를 유지하되, 28년째 그대로인 일괄공제(5억원)를 2배 상향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하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 일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의 아파트 한 채를 물려받는 중산층이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임 의원은 조선비즈에 “정부가 추진하려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50%→30%)나 최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 등은 일명 ‘초부자’만을 위한 감세라 부의 대물림을 야기한다”면서 “반면 일괄공제액을 높이는 건 상속세로만 수천억, 수조원을 내는 초부자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대신, 아파트 한 채 물려받는 수도권 중산층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야권 일각에서 ‘부자감세 동조’라는 지적이 일었지만, 최고세율을 유지한 채 공제액만 높이면 세제 혜택이 중산층에 오롯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 가격은 12억218만원이다. 동일 통계 기준 12억을 넘은 건 작년 11월(12억39만원) 이후 7개월 만이다. 현행 체계에선 일괄공제 5억원, 배우자공제 5억원으로 총 10억원이 적용돼 상속세를 내야한다. 임 의원은 이중 일괄공제액을 최저 7억~최고 10억으로 조정하는 안을 준비 중이다. 일괄공제액이 10억원으로 오르면, 매매가 15억원 수준의 서울 아파트엔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 법안은 임 의원이 원내지도부 소속 의원들과 외부 전문가 등 각계의 의견을 종합한 내용이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1997년 이후 거의 30년이 지났고 집값은 급등했는데 공제 기준을 현실적으로 조정하자는 것”이라며 “초부자에 대한 과세는 조세 형평성과 세수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파트 한 채 물려받는 중산층의 세 부담은 여러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는 19일 예정된는 ‘조세·재정 연구회’ 첫 모임에서도 관련 논의가 오갈 것으로 보인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와 임 의원이 주축인 이 모임은 ‘중산층 부담 완화’를 주제로 각종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동참한 연구 모임이다. 통상 국회 개원 후엔 여야 의원들이 다양한 연구모임을 발족한다. 특정 현안이나 정무적 성격의 모임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당대표 연임에 도전한 이재명 전 대표의 ‘금투세 유예’ 발언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당 안팎의 주목을 받게 됐다. 임 의원은 “원내·외 많은 분들과 상의하면서 마련한 법안”이라고 했다.
◇“세제가 곧 표심” 금투세·종부세 완화도 검토
금투세 유예론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는 이 전 대표가 띄웠다. 그는 지난 10일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시기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또 “금투세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제도이고, 증권거래세를 대체하는 제도라 생각해서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주식시장이 이렇게 악화한 주원인을 정부가 제공했는데 그 피해마저도, 그나마 가끔 올랐다고 세금을 떼면 억울할 수 있겠다”고 했다. 정치권은 대선 행보에 나선 이 전 대표가 개미(개인투자자) 표심을 잡으려는 전략으로 본다.
종부세 역시 원내지도부가 다루는 과제 중 하나다. 박 원내대표가 ‘1주택자 종부세 폐지론’을 처음 언급한 데 이어, 같은 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와 고민정 최고위원도 완화 의견을 내놨다. 대부분 ‘종부세 벨트’로 불리는 지역구 현역들로, 세금 이슈가 표심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박 수석부대표 등 일부는 종부세 과세표준을 현행 12억원에서 16억원으로 높이는 내용의 법안도 검토했다고 한다. 실제 발의를 하진 않았지만, 그만큼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내 여론이 형성됐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이런 기조로 종부세·상속세·금투세 관련 개편안을 마련하고, 올해 정기국회에서 여야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법안 논의는 원내사령탑인 박 원내대표과 세제 전문가인 임 의원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야권 내부 반발을 넘는 게 첫 번째 과제다. 당대표 후보인 김두관 전 의원은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행위이자, 노무현 대통령 이래 민주당 세제 정책의 근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1주택 종부세 폐지를) 공식 논의한 적이 없다”며 박 원내대표 발언을 반박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정책위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개별 의원의 생각일 뿐 정책위에선 논의하지도, 동의하지도 않는다”며 “몇몇이 모여 정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전날 이 전 대표가 금투세 적용 유예를 언급한 데 대해 “민생·복지에 투자할 돈이 없다. 지역 균형발전에 쓸 돈도 떨어졌는데 종부세를 줄이거나 유예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