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에서 불거진 ‘김건희 여사 문자’ 사태가 대통령실 당무 개입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4·10 총선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동훈 후보가 ‘명품가방 수수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김 여사 문자 메시지를 무시했다는 게 핵심이다. 민주당은 영부인이 선거에 개입했다며 ‘제2의 국정농단’ 공세에 화력을 모으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과거 당무 개입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사례도 재조명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10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윤 대통령과 함께 관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뉴스1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8일 당 회의에서 “‘읽씹 파문’의 본질은 둘의 부적절한 사적 연락”이라며 “대통령이 당 비대위원장에게 연락을 해도 ‘아바타’냐는 비판을 받을 텐데 김 여사가 무슨 자격으로 총선을 치르고 있는 비대위원장에게 사적으로 연락을 하나”라고 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영부인이 사사로이 여당 대표와 국정을 논하는 것이 밝혀졌다”며 “국정농단의 서막을 보는 것 같다. 명백한 당무 개입”이라고 했다.

국정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은 같은 날 YTN 라디오에서 “김 여사가 장관들한테도 문자를 많이 보냈다는 설이 있다”며 “사실로 밝혀지면 국정농단”이라고 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선출된 권력이 아닌 사인(私人)영부인이 비대위원장과 선거 관련 대화를 나눈 것 자체가 당무 개입”이라며 “원래 전당대회는 개싸움이지만, 이번 사태는 ‘국정농단’이 된다는 점에서 치명타다. 저럴수록 야당엔 ‘땡큐’”라고 했다.

이런 주장은 여권에서도 나왔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문자 사태의 핵심은) 대통령실의 전당대회 개입”이라며 “후보들이 출마하는 과정과 친윤계 인사들 내지는 반한 인사들이 구심이 생기는 과정을 보면 직·간접적으로 배후에 대통령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종 책임은 대통령실에 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도 제동을 걸었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당권주자들과 비공개로 만나 “전당대회 이후도 생각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후보 간 공방이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으로 연결될 경우,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와 같은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는 발언으로 보인다. 그는 당 회의에서도 “전당대회가 과도한 비난전 양상으로 흐른다”며 “당헌·당규에 어긋나는 언행은 선관위와 윤리위를 통해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6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4차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朴, 당무개입 2년 실형… 野 ‘탄핵 청문회’ 추진

야권이 ‘당무 개입’에 주목하는 건 박 전 대통령 사례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친박계 의원들이 공천을 받도록 현기환 정무수석에 지시하는 등 공천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현 수석이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친박계 인사들의 선거전략을 수립하고, 당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도 관여했다고 봤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한 후보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박 전 대통령을 기소했었다.

이런 가운데 야당은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의 ‘탄핵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를 촉구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이날 기준 130만명 이상의 서명을 얻어서다. 청원에는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김 여사 일가의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이 탄핵 사유로 포함됐다.

민주당은 상임위 회부 요건을 충족했다며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 청원심사소위원회를 통해 청문회 등 자체 심사를 벌이기로 했다. 법사위도 오는 9일 전체회의를 열어 청문회 실시계획서 채택 및 증인·참고인 출석 요구의 건을 의결하겠다고 밝혔다. 청문회는 ‘채상병 순직’ 1주기인 오는 19일에 맞춰 추진할 방침이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모녀를 청문회 핵심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