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한동훈 대세론’에 맞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일제히 소환했다. 한동훈 후보가 ‘채상병 특검(특별검사)법’ 수용을 제안한 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배신의 정치’라는 주장이다. 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했던 이 표현은 보수 지지층엔 탄핵 트라우마로 연결된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이 탄핵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점도 이런 공격을 돕는 요소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윤상현 의원,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윤상현 의원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첫번째 공부모임 ‘헌법 제84조 논쟁, 피고인이 대통령 되면 재판이 중단되는가?’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스1

한 후보는 1일 페이스북에 “일부 후보들의 공포마케팅은 구태이자 가스라이팅이고, 확장은커녕 있던 지지자들도 쫓아내는 뺄셈과 자해의 정치”라고 썼다. 또 ‘여당의 인신공격성 당권 경쟁 실망스럽다’는 제목의 대구 지역언론 사설도 공유했다. 사설은 “대야 투쟁에서는 말 한마디 않던 여당 인사들도 내부총질에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절윤’ ‘배신자’ 등의 인신공격이나 하는 저질 양상이 국민을 크게 실망시킨다”고 했다.

그는 전날에도 4.10 총선 당시를 언급하면서 “나경원, 원희룡 후보는 전국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윤상현 후보는 인천선대위원장으로 저와 함께 선거 지휘를 맡았다”며 “저도 진심을 다해 이 세 분 당선을 위해 뛰었다”고 썼다. 또 “이번 당대표 선거가 인신공격과 마타도어가 아니라 당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 후보가 언급한 ‘가스라이팅’은 원희룡·나경원·윤상현 후보가 과거 박 전 대통령 탄핵 상황에 빗대어 ‘2024년 한동훈=2015년 유승민=배신자’ 식의 공세를 펴는 것을 뜻한다. 원 후보는 전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간관계를 하루아침에 배신하고, 당원들을 배신하고 당정관계를 충돌케 했다”며 “2017년의 자중지란으로 우리가 대통령을 코너로 몰고 공격함으로써 공멸했던 경험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했다.

나 후보 캠프는 같은 날 논평에서 “당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내쳤던 장면을 잊지 못했다. 보수는 갈라지고 분열했다”며 “채 해병 특검의 칼끝은 명백히 대통령을 향해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특검 수용을 주장한다면, 사익을 위해 정의에 눈 감은 정치꾼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 후보도 “절윤(絶尹)이 된 배신의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朴, 유승민에 “배신의 정치”… 탄핵 트라우마 전략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국무회의에서 “선거를 수단으로 삼아 당선된 후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한다.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달라”고 했었다.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말이다. 그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청와대와 충돌하는 소신 발언을 했었다.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 통제권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도 야당과 합의해 통과시켰다. 청와대가 강하게 반대했던 법으로, 이 시점 당정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보수 진영에선 이를 계기로 내부 분열이 극심해지고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원 후보가 굳이 이 표현을 사용한 건 한 후보의 ‘특검 카드’가 보수 분열의 씨앗이 될 거란 우려를 키우는 전략이다. 7·23 전당대회는 당원 선거인단 투표 80%, 국민의힘 지지층·무당층 여론조사 20%를 반영한다. 당원 의중이 승패를 결정한다. 이들 다수는 탄핵을 목격한 전통 지지층이다.

당 관계자는 “윤석열-박근혜의 정치적 위상도 다르고, (박 전 대통령처럼) 태블릿 PC같은 스모킹 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용산에선 전당대회를 계기로 내부 불안 요소 자체를 제거하길 원한다. 한동훈 체제에선 민주당이 이런 내부 분열을 최대한 활용할 거다. 당원들도 이런 불안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