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국가적 위기 수준’에 다다른 저출생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현행 현금성 지원 금액과 범위를 늘리거나, 펀드를 통해 성년이 된 자녀에 목돈을 마련해주는 식이다. 그러나 법안을 심사해야 할 국회 상임위원회는 공전 중이다. 원내 1당인 민주당이 핵심 상임위를 독점하고, 국민의힘은 상임위를 전면 거부해서다. 개원한 지 약 3주가 지났지만, 야당 주도의 반쪽 회의만 열리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저출생대응특별위원회 첫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18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저출생 대응을 위한 ‘민생3법(남녀고용평등법·고용보험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정 육아휴직 기간을 1년에서 1년2개월로 늘리고, 배우자 유급 출산휴가 기간도 기존 10일에서 30일로 늘리는 게 골자다.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 때 ‘민생공감 531법안’으로 공약한 내용들이다.

같은 당 성일종 의원은 ‘국민연금 출산크레딧 제도’의 혜택 범위를 기존 둘째 자녀에서 첫째 자녀로 확대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냈다. 현재는 두 자녀 이상의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해 최대 50개월의 연금 가입 기간 추가 산입을 인정해준다. 이런 혜택을 한 자녀인 경우에도 부여하고, 추가 산입 한도도 폐지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기준 출산율이 0.72로 1에도 못 미치는 현실을 반영하자는 취지다.

민주당은 단독 구성한 상임위를 앞세워 입법을 추진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출생 기본소득 3법’(아동수당법·아동복지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8세 미만에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현행 아동수당 범위와 금액을 각각 18세 미만, 월 20만원으로 확대했다. 출생 후 성인이 될 때까지 국가가 자녀 명의의 펀드에 월 10만원을 지급하고, 보호자도 월 10만원을 함께 납입하는 ‘자립 펀드법도 내놨다. 18세가 될 때까진 꺼내 쓸 수 없고, 이후 학자금이나 창업자금 등 목돈이 필요할 때 쓰게 한다. 이재명 대표가 총선 때 공약한 ‘기본사회 5대 정책’의 일부다.

22대 국회에서 저출생 법안은 이미 20여건이 발의됐다. 이 문제를 국가 과제로 다뤄야 한다는 데는 정파를 떠나 공감한다는 뜻이다. 다만 법안을 논의해야 할 상임위는 가동 불가 상태다. 여야가 원(院) 구성 합의를 못 하고, 야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상임위를 강행해서다.

민주당은 이달 초 법사위·운영위·과방위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했다.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당의 반대에도 본회의 개회 및 표결을 허가해줬다. 관례상 의장은 원내 1당, 법사위원장은 2당, 운영위원장은 여당이 갖는다. 그러나 민주당은 해당 상임위를 전부 가져갔고, 국민의힘은 이에 반발해 상임위원 명단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또 “단독 원구성은 무효”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