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보여준 김 위원장의 모습은 우선은 매우 솔직했습니다. 그들의 고충도 솔직히 털어놓았고요. 그때 미국과 회담이 예정돼 있었는데, 미국과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아무런 경험이 없다는 것에 대한 걱정도 이야기했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은 17일 출간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선 “무례하고 거칠다는 평가도 있지만, 나는 그가 솔직해서 좋았다”고 했다.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쪽은 요지부동이었다”며 “만나는 순간에는 좋은 얼굴로 부드러운 말을 하지만 돌아서면 전혀 진전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17일 출간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김영사 제공

이 책의 부제는 ‘문제인 회고록: 외교안보 편’이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북미 싱가포르·하노이 회담,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등을 비롯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주요한 외교·안보적 사건의 순간을 담고 있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가 질문을 하면 문 전 대통령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최 교수는 외교부 1차관 등을 역임하며 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대부분을 보좌한 인물이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인 조건 때문에 균형 외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중·일·러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고 지금의 남북분단도 외세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역사에서, 또한 근래에 와서도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힌 편중 외교 또는 사대 외교로 국난을 초래하곤 한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미북 정상회담 성사와 관련해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어휴! 트럼프, 김정은 그 두 터프가이를 어떻게 서로 마주 앉혔어요? 비법이 뭡니까?”라고 물은 일화도 소개했다. 문 전 대통령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유럽 쪽 정상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우리로서는 분단 이후 북미 간에 처음으로 정상들을 마주 앉히는 것인데, 그 과정을 우리가 중재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등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후회의 순간도 털어놓았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그대로 회담(북미 3차 정상회담) 없이 끝나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나중에 그런 판단을 하게 됐을 때 김 위원장에게 만나자고 여러 번 제안했는데 이뤄지지 않았다. 실기한 것”이라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타이밍에 내가 제안해서 한번 보자고 했으면 좋겠다는 후회가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북한이 매번 ‘우리 민족끼리’라고 하면서도 북미대화에만 매달리면서 남북관계를 종속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기도 하다”고 아쉬워했다.

문 전 대통령은 책 머리에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성과를 자랑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라며 “문재인 정부가 이룬 일과 이루지 못한 일의 의미와 추진 배경, 성공과 실패의 원인과 결과를 성찰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현 정부 비판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현재 미·중 간의 경쟁·갈등 격화로 우리 외교 여건이 더욱 힘들어진 것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버린 현 정부의 과도하게 이념적인 태도가 우리 외교의 어려움을 더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금 정부가 바뀌고 나니까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며 “육사 교정에서 독립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한다든지, 또는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고에 대한 수사 개입에 군이 휘둘린다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면, 아직 정치적 중립 면에서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정치권력이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전통이 확립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이달 10일 각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현재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