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원(院)구성을 앞두고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국회의장 선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경선 후보들이 ‘명심’(明心·이재명 대표 마음)을 가진 후보를 자처하면서, 의장의 ‘중립 의무’를 흔드는 발언도 공공연히 나온다. 국회의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국회법상 관련 조항을 만든 취지에 어긋나지만, 법적 제재 장치는 없다. 학계에선 처벌에 의한 통제 대신 국회의 자정 능력에 기댈 수 밖에 없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현재 민주당에선 6선 조정식 의원과 추미애 당선인, 5선 우원식·정성호 의원이 의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내 경선은 이달 중순쯤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본투표는 오는 30일 개원 이후 일주일 안에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관례상 의장은 원내 제1당 최다선 의원이 맡는다.
의장 후보들은 앞다퉈 거대 야당 중심의 의회 운영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가장 먼저 깃발을 든 건 추 당선인이다. 그는 ‘혁신 의장’을 공약하며 “국회의장이 중립은 아니다”라고 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정 의원도 CBS 라디오에서 “법률에 당적을 이탈하라는 구체적인 내용은 있지 않다. 그건 정치적인 의미”라고 했다.
우 의원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강성 친명계’ 원외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간담회에 참석해 “대통령 거부권을 무력화할 8석을 (민주당이) 더 가져와야 한다”며 “국회의장은 중립 또는 몰가치가 아니다. 국회 사회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는 의장 후보 4명이 일제히 참석해 ‘정견발표회’를 방불케 했다.
이재명 지도부에서 사무총장을 지낸 조 의원도 “지난 21대 국회를 보면 민주당이 배출한 의장인데 민주당 출신으로서 제대로 민주당의 뜻을 반영했느냐는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불만도 있었다”며 “그런 부분을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與野 법안 대치 중인데… 의장 후보들 “직권상정”
민주당 후보들은 국회의장의 가장 강력한 권한인 ‘법률안 직권 상정’까지 예고했다. 통상 법안을 본회의 표결에 부치려면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후 여야 원내대표가 본회의 일정 및 안건을 조율한다.
반면 여야 이견이 큰 법안의 경우, 이러한 과정을 온전히 거치기 어렵다.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법사위에 장기간 계류하거나 본회의 일정 협상 자체가 불발되는 경우가 잦다. 이럴 때 국회법 제85조에 따르면 의장은 특정한 요건에 해당할 때 직권으로 법안에 대한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
정 의원은 MBC라디오에서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다수당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합의까지 못 가면 의장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협의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조 의원도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선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려면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 중 최소 1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지난 2014년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이 엄격하게 제한돼서다.
◇“법적 제재 사실상 불가… 국회 신뢰 스스로 떨어뜨려”
국회법 제20조2에 따라 국회의장은 ‘중립성 보장을 위해’ 당적(黨籍)을 보유할 수 없다. 16대 국회 당시 이러한 의무를 명시한 조항이 신설됐다. ‘당적 미보유’라는 방식보다 ‘의장의 중립 의무’에 방점을 찍은 조항이다. 즉, 국가 3부요인 중 하나인 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법에 명시된 사항이다.
그러나 정작 의장의 ‘편파적 언행’을 제재할 조항은 없다. 구체적으로 ‘중립 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하거나 기준을 명시하기도 어렵다. 결국 국회 스스로 ‘팬덤 정치’ 문화의 침투를 통제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반’ 기준을 만들기도 쉽지 않고,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돼도 대부분 국회의원들은 처벌을 받지 않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며 “처벌 조항에 의한 통제보다는 국민이나 언론에 의한 통제가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또 “윤 대통령이 ‘불통’의 사유로 총선에서 참패했듯, 의장의 일방적 독주는 다음 번 선거에서 평가받을 것”이라고 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 교수도 “국회의장이 국회 내에서 중립을 어길 경우, 의원들 사이에서도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또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명성을 드러내야 지지층의 지지를 많이 받고, 이를 통해 의원들을 압박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22대 국회에 강경한 이들이 다수 입성하기 때문에 의장 운신의 폭도 좁아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