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쇄신용 인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제22대 총선에서 대패한 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의 후임으로 마땅한 인물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17일에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각각 국무총리와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되면서 정치권이 들썩였다.

대통령실에서는 즉각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에서는 여러 대안을 살피던 대통령실과 여권에서 민심을 떠보기 위해 흘려봤다는 해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거론되던 후보군 중 고사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여권 내부에서 인물난이 심한 증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 /뉴스1

이날 오전 일부 매체는 대통령실 및 여권 관계자발로 윤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 후임에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이관섭 비서실장 후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보도 약 3시간 후 문자 공지를 통해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박영선 전 장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인선은 검토된 바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황당한 소리”라고 일축했다.

대통령실이 조속히 진화에 나선 것은 여권을 비롯한 각계의 거친 반응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이) 이명박(MB) 아바타에서 문재인 아바타가 되는 것이냐. 끔찍한 혼종”이라고 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새로운 인적 쇄신을 하는 데 있어서 말 그대로 제한 없이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도 “보수 유권자들의 생각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오전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찔러보기, 띄워보기이자 간 보기”라고 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통째로 민주당에 넘기는 것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도 적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대선 레이스 당시인 2021년 11월 15일 인터넷 매체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편은)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충신”이라고 한 것도 다시 회자됐다.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해보면 해당 인선안은 대통령실 내부에서 실제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로 검토됐던 사안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번 인선이 정무형·협치형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야권 인사도 폭넓게 살펴본다는 취지에서다.

더구나 해당 인사들을 중용하는 것이 대통령 입장에서 크게 이상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양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현 조국혁신당 대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만든 주역으로 꼽힌다. 박 전 국정원장은 “(2019년) 검찰총장에 윤 대통령을 추천한 사람은 양 전 원장”이라고 했다.

양 전 원장은 이날 보도가 나온 후 복수의 지인들에게 “문재인 정부에서도 백의종군을 택했고 민주연구원장을 끝으로 정치에서 손을 뗐다. 무리한 보도 같다”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박 전 장관은 전날 귀국한다고 밝힌 상황이다. 박 전 장관은 전날 페이스북에 “학기는 6월 말까지지만 5월, 6월에 책 반도체주권국가 관련 강의가 몇 차례 있어서 조금 일찍 귀국 한다”고 적었다. 그는 17대 총선 이후 내리 당선된 4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냈다. 다만 그는 아직 관련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인선이 현실화할 경우 파격 인선이라는 평가와 함께 여권의 반발도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해프닝이 일어난 배경으로 여권 내부 인물난을 지목하기도 한다. 총선 후 윤 대통령이 국정 쇄신을 위한 인선을 하겠다고 밝힌 후 핵심 인사들에 대한 인선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후임자 찾기에 난항을 보인다는 의미다.

권영세 의원은 지난 15일 본인이 차기 국무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 “낭설이라고 본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민주당 김부겸 전 총리도 후임 총리설 보도가 나오자 즉각 부인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중책을 제의받았으나 거부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오늘 해프닝은 메시지 관리의 부실함을 드러낸 것으로 상당히 아쉽다”라며 “협치란 자신의 정체성과 기조를 유지하면서 상대와 타협하는 것이지, 자신을 부정하면서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적었다.

한편, 현재 거론되는 총리 후보군으로는 윤 대통령 측근인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비롯해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 등이 있다. 비서실장에는 인수위에서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았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거론되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 이정현 전 의원, 유기준 전 의원 등도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