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일 의대 정원 증원 2000명에 반발하는 의료계에 대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이 조건부이긴 하지만, 의료계와 논의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논란의 핵심인 의대 정원 증원 2000명을 포함, 의료계와 논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의대 정원 증원 등 의료 개혁과 관련 대국민담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약 53분간 생중계된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2000명에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시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 있다”며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정부와 의료계가 정부의 ‘2000명 증원’ 규모를 놓고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처음 나왔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 앞서 고개를 숙이며 “국민들의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 드리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송구한 마음”이라며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은 국민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의료 개혁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미안함을 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00명’의 당위성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하여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이고,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37차례 논의 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의 2000명 증원 불가론에 대해선 “근거도 없이 350명, 500명, 1000명 등 중구난방으로 여러 숫자를 던지고, 그뿐만 아니라 지금보다 500명에서 1000명을 줄여야 한다고 으름장도 놓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이미 2025년 2000명 증원을 대학별로 배정을 완료한 상황에서 의료계가 ‘합리적인 조정안’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입시 혼선을 줄이기 위해 2025년 의대 정원은 2000명으로 유지하되, 2035년까지 1만 명 확충 계획을 조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이런 부분을 앞으로 의료계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사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 구성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의사 단체는 하루라도 빨리 정부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무엇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길인지 논의에 나서야 한다”며 “의료 관련 직역 간 광범위한 협력을 통해 의료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저는 의료 개혁을 위한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 설치’를 말씀드린 바 있다”며 “국민, 의료계, 정부가 참여하는 의료 개혁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 구성도 좋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의대 증원을 위시한 의료 개혁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27년 동안 반복한 실수를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다”며 “지난 27년 동안, 국민의 90%가 찬성하는 의사 증원과 의료 개혁을 그 어떤 정권도 해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고 덧붙였다. 이어 “역대 어느 정부도 정치적 유불리 셈법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이렇게 방치돼 지금처럼 절박한 상황까지 왔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불러내셔서 이 자리에 세워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안다”며 “국민의 보편적 이익에 반하는 기득권 카르텔과 타협하고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제가 정치적 득실을 따질 줄 몰라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구조적, 고질적 문제를 개혁하는 것이 바로 국민이 선출한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정부 출범 후 이번이 세 번째다. 그는 앞서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2023년 11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