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현역 물갈이로 공천 잡음과 갈등이 큰 가운데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 공천 작업이 순조로운 모양새다. 현역 의원들의 탈당 러시(열풍)나 공천 불만으로 인한 무소속 출마 선언 등 거센 반발은 없다. 페널티를 받고도 다선 의원들 다수가 본선행을 확정 짓자, 국민의힘은 현역 컷오프(공천 배제)로 인한 공천 잡음 대신 안정을 택했다. 다만 앞으로 남은 본선에서 상대 당 후보보다 경쟁력 있는 인적 쇄신까진 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213차 회의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국민의힘 공천은 ‘현역 프리미엄’이 부각되는 추세다. 이날 추가로 발표한 공천 결과를 기준으로 단수 공천 또는 우선 추천(전략 공천)된 현역 의원은 총 34명이다. 제1차 경선을 중도 포기한 홍문표 의원과 경기 이천시·양평군 경선에서 패한 이태규(재선·비례) 의원을 제외한 중진 의원들은 모두 경선에서 승리했다.

당초 국민의힘은 동일지역구 3선 이상 15% 현역 페널티와 다양한 청년·신인 가점 등의 시스템 공천을 도입하며 혁신 공천을 예고했다. 하지만 실상은 인적 쇄신이 현역 프리미엄에 막혀 버린 형국이다. 당 관계자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아무리 국민적 논란이 있고, 시스템 공천에 따른 페널티를 준다고 해도 현역이 갖는 인지도나 지역구 관리는 신인들이 넘기엔 너무나도 높은 벽”이라며 “기존에 있는 많은 스펙에서 조금 빠지는 점수와 아주 적은 점수에서 가점을 줬을 때 그 차이를 뛰어넘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는 논란에 휩싸인 의원들도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상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우택(5선·충북 청주시 상당구) 의원이다. 정 의원은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과의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6선에 도전하게 됐다. 그는 지난해 지역의 한 카페 사장으로부터 돈 봉투를 받는 장면이 담긴 CC(폐쇄)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돈 봉투 의혹’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정 의원은 돈 봉투를 바로 돌려줬고, 이후 공식 후원금으로 회계 처리를 했다며 적극 반박했다.

경선에서 승리한 박덕흠(3선·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군)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있을 당시, 피감기관들로부터 가족회사가 수천억원대 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른바 ‘이해 충돌 논란’이다. 박 의원은 2020년 9월 탈당했다가 약 15개월 만에 조용히 복당했고, 이후 2022년 6월 경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선교 전 의원은 경기 여주시·양평군에서 이태규 의원을 꺾고 공천을 받으면서 논란이 됐다. 김 전 의원은 불법 후원금을 모집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5월 대법원 판결에서 본인은 무죄를 확정받았지만, 회계 책임자가 벌금 1000만원형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이 상실됐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 또는 선거사무장·회계 책임자 등이 징역형이나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전·현역 의원들이 선전하자, 상대적으로 ‘정치신인’인 대통령실 인사들은 고배를 마셨다. 최지우 전 대통령 법률비서관실 행정관은 엄태영(초선·충북 제천시·단양군) 의원에게 졌고, 이동석 전 대통령실 행정관도 이종배(3선·충북 충주시) 의원에게 패했다. 서울 동대문갑에 출사표를 던졌던 여명 전 대통령실 행정관도 경기 포천·가평에서 3선을 지낸 김영우 전 의원에 밀렸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1차 경선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당 일각에서 ‘용산 낙하산 공천’을 우려했던 대통령실 인사들이 잇달아 경선의 벽을 넘지 못하자,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 공천 논란도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홍 의원의 경선 포기로 단수 공천된 강승규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 수석비서관과 이날 경기 용인시갑에 우선 추천된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등 몇몇을 제외하면 윤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됐던 대통령실 인사들은 모두 공천받지 못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신인들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지만, 시스템 공천을 위해 기준을 미리 만들고 공표까지 하지 않았나. 그 기준에 맞춰서 점수를 매겼을 때 받은 게 지금의 공천 결과고, 이게 그들의 역량에 대한 성적표”라며 “대통령실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실 출신이라는 타이틀과는 별개로 그들의 역량이 현역보다 우위에 있지 못해서 탈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이겨야 하는 총선 아닌가. 공정하게 했다면 이기기 위한 선수를 선거판에 내보내는 게 옳은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안정적인 공천을 위해 인적 쇄신을 뒤로 미룬 선택을 한 거라고 평가한다. 현재까지 컷오프된 현역 의원은 비례대표인 서정숙·최영희 의원 등 두 사람이 전부다. 이외에 장제원·김웅·윤두현·최춘식·박대수·이달곤·홍문표·김희국 등 현역 의원들도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그 자리를 ‘새 얼굴’로 채우는 인적 쇄신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힘의 이번 총선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다. 때문에 민주당처럼 현역들의 탈당 러시가 이어지지 않는 선에서 공천을 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식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인적 쇄신이나 혁신 등에서 비난도 받고 욕은 먹더라도 단일대오를 유지해 선거 승리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움직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앞으로는 용산보다 미래 권력을 미는 쪽으로 공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민주당의 공천 행보도 염두에 둔 결정을 하나씩 보류된 지역에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인적 쇄신이나 혁신의 의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건 맞는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당 공천이 상대적으로 민주당보다 안정적이고 단계별로 잘 이뤄지는 모습”이라며 “앞으로 남은 한 달간 국민적 여론이 ‘새로운 얼굴’을 원할 수도 있다. 이 부분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단순히 몇몇 현역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나 컷오프만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쇄신의 바람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일 수 있다”며 “결국 국민의 ‘니즈’를 가장 많이 반영한 정당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를 거머쥘 것으로 보인다. 그 첫걸음이 이번 공천”이라고 말했다.